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가 넘도록 바쁘게 치닫는 일상이다. 꼬박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강행군이랄까. 채 몸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는 와중 틈틈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하루 중 웃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차를 마시며 명상하는 시간, 그리고 좋은 책을 읽는 시간을 위해 쪼개어 두라는 말이 있었던가.
오늘은 그야말로 망중한(忙中閑), 잠시의 한가함에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청하듯 ‘2010년 오늘의 좋은 시’를 펼쳤다. 직장을 따라 오느라 옷가지 몇 벌에 세면도구만 겨우 챙겼을 뿐인 간단한 짐 속의 묵은 시집 한 권이 더없이 반갑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의 ‘중국집 오토바이의 행동반경에 대하여’라는 유홍준 시인의 시 속 오토바이를 모는 소년의 처지가 영락없이 지금의 나와 같아서일 게다.
은근한 차 맛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시를 천천히 읽는다.
중국집 오토바이의 행동반경에 대하여
오늘은 장사 잘 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중국집 오토바이의
행동반경에 대하여 생각한다
중국집 오토바이의 1일 배달횟수가 아니라 행동반경에 대하여!
누가 아이를 키워
중국집 오토바이를 타게 하고 싶으랴
누가 아이를 키워 제 동네만 뺑뺑 돌게 하고 싶으랴
(하루에도 수백 번, 제 동네를 도는 아이는 결국 정신이 돌 수밖에 없다는 속설…)
그러나 오토바이는 아름답고
자장면은 맛있고
저 중국집 오토바이가 없다면 안 돼
나는 저 중국집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꽁무니를 바라봐
행동반경이 좁다는 것은 뱅뱅뱅뱅뱅 돌아야 한다는 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말
책 몰라 여행 몰라 취미 몰라
그런 건 다 몰라
오늘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우리 동네 오토바이
시의 여파려니 어릴 적 읽은 불란서 동화집의 떠돌이 고아 소년 라스무스가 떠올랐다.
오스칼이라는 방랑자 할아버지를 만나 그의 늙은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함께 귀향하는 따뜻한 이야기다. 향긋한 건초더미에서 누워 늦도록 도란도란 얘기 나누던 밤도 있었다.
낡아 뚫어진 지붕 사이로 보이던 별빛에 취하던 밤. 그러나 둘이서 동행하며 겪던 숱한 방황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때론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쓰는 고초 끝에 지친 몸으로 들어서던 따뜻한 오두막. 그 마지막 장면을 회억(回憶)하며 페르귄트를 기다리던 솔베이지의 노래가 흥얼거린다.
태풍일과(颱風一過), 맞다. 우리 두 사람 생에 한 차례 불어 닥친 모진 바람의 후유증은 컸다. 재건(再建)의 의지를 잃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누군가에게 제 지닌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뿌듯함에 우리 생의 저물녘에 찾아온 모처럼의 행운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무 해 넘도록 방치해 둔 시골집을 완벽히 리모델링할 넉넉한 자금 마련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5개년 프로젝트다. 웬만한 시골 동네만 한 크기의 건물을 뱅뱅뱅뱅뱅 도는 고단하지만 즐거운 일상이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