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해질녘에 집안 정원에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오려는가보다 하고 시야를 넓혀보니 산천은 녹음으로 짖어져 있고, 들녘은 빈 땅 없이 인간들의 밥줄인 벼내기가 마무리되어 푸르러 가고 있다. 세월은 어느덧 2014년 중반기를 시작하는 7월이 되어 그 첫날이다. 칠월은, 개인은 물론 각 기관이나 단체 분야 분야에서 연중계획 재정비기간으로 알고 새로운 각오가 대단할 것이다.
어수선했던 3개월이 국민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패기마저 상실하게 되어 피차간에 호탕하게 폭소한번 터트리지 못하고 지내온 4~6월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마음을 가다듬고 각자의 소임의 자리에서 산천의 푸름같이 우리의 일상이 약진하는 남은 후반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두 총리후보가 낙마하고 부대의 총기사고가 있었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고 심기일전하여 나라와 자기발전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법화경에, 참으로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누구에게도 그 원망을 풀지 못한다. 다만 원망을 버림으로써만 원망을 풀 수 있다. 이것은 영구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올린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악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및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 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식탁엔 은쟁반에/ 하이 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정신을 뛰어넘어 그를 앞서는 이 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약동하는 청록, 저 푸름 같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를 세운 주체가 국민개개인이라는 사회계약설(社會契約說)을 바탕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는 반드시 국민 모두가, 또는 국정운영자들이 덕(德)이 있어야 한다. 덕은 노력이나 수양이나 교육으로 사회적인 규범이라든가 도덕을 닦아 성취하여, 그 결과 애쓰지 않아도 규범이나 바른길을 저절로 행할 수 있게 된 사람, 또는 그 상태를 말함인데, 이런 바탕이 없이는 절대로 일등국민이나 나라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동양명언에, 매일 나 자신을 새롭게 하라! 몇 번이라도 새롭게 하라! 내 마음이 새롭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못한다. 고 했다. 이러한 새로운 것이 이루어지려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상부구조인 국가기구, 법체계, 이데올로기 외에 규범체계, 관습, 인습, 예술, 종교, 학문, 언어세계가 먼저 덕에 기준을 두어야 하고, 따라서 하부구조인 생산 수단이나 그 활동을 토대로 하는 집단 또한 덕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솔로몬이 노년에 읊는,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노래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나라나, 국민개개인이 다 그러하다. 행복은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도약 마찬가지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돌아가는 것은 만인이 다 똑같은 것인데 한번 태어난 인생을 신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요즘 SNS에, 한사람을 위해 일하려 했고 그만두는 것도 한 사람을 위해서라고 하여 날마다 비난이 글이 올라오고 있다.
물론 그 말속에는 한사람의 위치가 크기에 그 한사람을 위하면 모든 국민을 위한다는 뉘앙스가 숨어있지만,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한사람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틀을 생각하며 주어진 한 번의 삶을 크고 뜻있게 보내야 할 것이다. 엊그제 사표반려 후 재 유임된 정홍원 총리가 진도 세월 호 유가족과 함께 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최 규 준
수 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