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른 체험의 정보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신념이 갈등의 문제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옳으면 설득될 수도 있어야 하고, 서로의 신념을 간섭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만 해서도 안 된다.
상호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서로의 신념을 존중해주는 태도만은 같아야한다는 것이다.
신념이란 각자의 마음이 만들어낸 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누구든지 자기만의 신념을 추구할 권리가 주어져 있으며, 누구에게도 남의 신념을 억압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강요할 권리도 없으며, 서로 다른 신념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킬 필요도 없음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려하지 않고 타협을 거부만 하지 말 것이며, 자기 신념에 대한 유연성을 보인다고 하여 신념이 약하다든가 빈약하다고 폄하해서도 안 될 것이며,
상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이해하기 힘들 것임을 인정하고, 자기 또한 상대의 신념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신념이 강하다는 것과 배타적인 태도는 구분되도록 처신할 줄 알아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배척만 하려들지 말고 굴복이 아닌 수용의 여유를 보여라. 그리고 신념이란 반드시 진실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진정성만으로도 신념의 가치는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믿는 것이 환각일지라도 믿음 그 자체가 진실임을 믿는 것이 강한 신념이고, 설령 그 믿음이 틀렸다 해도 자신의 경험에 대한 진정성에 의심을 갖지 않는다면 강한 신념이다.
신념이란 진실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 안에서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어떤 의미와 가치에 의심을 보이지 않는 의식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증거가 없어서 자신의 견해인 신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 ‘진짜’임을 알고 있지만 그 ‘진짜’라는 믿음이 환각이었을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하지 않으려는 경직성에 대한 여유의 지혜를 발휘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은 언제나 자기 마음속에서는 진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라고 스스로 믿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으며, 설사 그것이 틀렸다 해도 무의미한 느낌이 자기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할 줄 알아야 한다.
강한 신념은 다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유연성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경험의 진정성에는 의심을 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경험과 소통의 갈등, 진실과 진정성의 혼란, 신념과 사실의 괴리를 극복해내기란 대단히 난해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숙한 삶으로 성공한 행복을 누리려면 경험하는 신념들로 뒤얽힌 혼돈을 술술 풀어가야 한다.
그런데 만약 모든 경험을 실재하는 것으로 실증해 낸다면 혼란의 증거들이 이미 입증되었으므로 갈등을 유발할 개연성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여서 혼침(昏沈) 현상은 겪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실제라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보증할 수 없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속고 있을 수 있는 환경에 항상 노출되어 있지만 다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럴 리가 없다고 단호히 단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주장이 안통하면 화를 내면서 다른 견해를 억압하거나 자기 생각을 옹호하려 든다. 그러면서 다른 가능성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저항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확신이 있다면 자기 경험의 진정성을 흔들어버릴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다른 주장을 억압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유연한 신념을 가진 자들에게는 이런 체험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신념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억압해야만 하는 불온한 일이다. 그러므로 저항에 실패하면 마음을 어지럽히게 되고 삶의 의미에 대한 위협이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불안, 우울, 공허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경험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도 궁극적으로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남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만들어내는 무의식속의 근거 없는 믿음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신념의 증거들을 바깥세상에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반대의 증거는 철저히 제거해야만 한다. 이런 신념이 강화될수록 자신의 삶이 피폐해질 뿐만 아니라 남과 세상을 피곤하게 한다.
따라서 의미나 신념이란 죽고 싶을 정도로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저주일수도 있고 삶의 지평을 풍성하게 하는 축복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고 자문한다면 배부른 소크라테스라 답할 수 있는 자아의 성숙을 즐기는 충만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