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 더 나쁜 사람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6년 10월 27일(화) 16:24 가+가-

‘나쁜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더 나쁜 사람’이 있다. ‘나쁜 사람’과 ‘더 나쁜 사람’을 갈라놓는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단순히 저지른 행동의 외형적 크기나 법적 처벌의 무게에 있지 않다. 그 차이는 인간 내부의 깊은 심연,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지, 위선의 정도, 그리고 부끄러움(恥)을 아는 능력에서 갈라진다.
‘나쁜 사람’은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기심이나 욕망, 순간의 유혹이나 이성의 마비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적어도 자신이 도덕적·윤리적 선을 넘었다는 인지는 내부 남아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악행에는 일종의 머뭇거림이나 그늘이 드리워진다.
반면 ‘더 나쁜 사람’은 자신의 악행을 거창한 명분이나 정의, 혹은 어쩔 수 없는 정당성으로 포장한다. 이들은 고도의 위선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어, 스스로 ‘정의의 체현자’나 ‘어쩔 수 없는 피해자’로 입각시킨다. 악을 행하면서도 도덕적 우월감이나 명분을 느끼며, 자신의 행동이 사회나 집단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고 철저히 스스로 속인다. 나쁜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악을 저지르지만, 더 나쁜 사람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완성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보루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염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현들이 강조해 온 성찰의 출발점 역시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는 자의식에 있다.
‘나쁜 사람’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나 찌꺼기 같은 죄책감이 남아 있다. 선과 악의 경계에 섰을 때 멈칫하거나,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그릇됨을 뉘우치고 눈물 흘릴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 회개의 여지가 있기에 그들은 여전히 구원의 영역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더 나쁜 사람’은 염치를 완벽히 잃어버린 존재이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조차 반성이나 사유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타인이나 환경으로 전가하고, 적반하장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가스라이팅을 일삼는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신경이 마비되었기에 이들에게는 반성도, 성찰도, 개선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성찰의 문을 닫아버린 존재, 그것이 바로 더 나쁜 사람의 본질이다.
타인의 슬픔과 상처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한 인간의 인격적 깊이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나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을 적극적으로 즐기거나 무한정 확대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의 마지노선이 존재하며, 타인의 눈물 앞에서 최소한의 불편함이나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더 나쁜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완벽히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을 자신의 입지를 다지거나 이익을 도모하는 유용한 도구로 삼는다. 타인의 슬픔을 계산적으로 이용하고, 상처 입은 이의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한다. 타인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자신의 셈법만을 따지는 냉혹함, 즉 타자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도구화야말로 더 나쁜 사람이 지닌 비정한 얼굴이다.
단순히 한 사람이 저지른 개별적 악행은 피해를 남기지만, 그 파급력이 사회 전체의 도덕적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 나쁜 사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고 치명적이다. 이들은 선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철저히 배신하고, 도덕적 가치를 희화화한다. 이들의 행태를 본 사람들은 “선하게 살아봤자 아무 소용 없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라는 식의 깊은 회의감과 허무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선(善)에 대한 의지와 세상에 대한 신뢰를 앗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나쁜 사람이 사회에 저지르는 가장 큰 범죄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문학가 앙드레 지드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악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위선’을 꼽은 바 있다. 나쁜 사람은 인간이 지닌 유약함과 이기심의 결과로 비틀걸음치는 자라면, 더 나쁜 사람은 그 비틀거림을 ‘바른 걸음’이라 주장하며 세상마저 비틀거리게 만드는 자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거친 악만이 아니다. 선의의 탈을 쓰고, 고상한 언어로 자신의 욕망을 포장하며, 타인의 고통을 발판 삼아 높이 올라서려는 그 은밀하고도 매끄러운 위선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더 나쁜 사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