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플레이어가 없어 무관심 속에 출항했던 김은중호가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혔다.
김은중 감독이 이끈 한국 U-20 대표팀은 12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FIFA U-20 월드컵 3·4위 결정전에서 이스라엘에 1-3으로 져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2019년 폴란드 대회(준우승)에 이어 2회 연속 4강 진출이란 성과를 냈다.
사실 김은중호가 4년 전 정정용호에 버금가는 성적을 낼 것으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해외파 김용학(포르티모넨세)과 K리그1에서 꾸준히 나섰던 배준호(대전) 정도가 눈에 띄는 선수였고, 나머지는 무명에 가까웠다.
이강인(마요르카)과 같은 스타의 부재는 자연스럽게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애초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가 본선에 오른 이스라엘의 입국을 거부한 인도네시아 내 무슬림의 반대에 부딪혀 아르헨티나로 개최지가 급하게 옮겨지면서 김은중호를 향한 기대는 더 차갑게 식었다.
대회 전 부상도 발목을 잡았다.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 소속인 이현주와 올해 초 U-20 아시안컵에서 활약한 공격수 성진영(고려대)이 부상으로 낙마했다.
또 배준호도 근육 부상으로 조별리그까지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온갖 우려 속에 U-20 월드컵에 나선 김은중호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우승 후보로 꼽힌 프랑스를 2-1로 누르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김은중호는 조 2위로 16강에 올랐고, 16강에서 에콰도르(3-2 승), 8강에서 나이지리아(1-0 승)를 차례대로 꺾고 2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일본과 우즈베키스탄이 각각 조별리그와 16강에 일찌감치 탈락한 가운데 한국은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준결승까지 살아남았다.
비록 이탈리아와의 4강에서 1-2로 분패했지만, 김은중호가 보여준 실리축구는 대회 내내 빛났다.
특히나 소속팀에서 기회가 적어 실전 감각이 부족했던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낸 것과 세트피스와 역습의 완성도를 높인 전술 운용은 단연 압권이었다.
김은중호는 이번 대회에서 총 10골을 기록했는데, 이중 6골이 정지된 상태에서 나온 세트피스 득점이었다.
대회 전까지 원석이었던 선수들도 김 감독의 지도아래 보석으로 탈바꿈했다. 이른바 ‘골짜기 세대’로 불린 김은중호의 대반전이다.
‘주장’ 이승원(강원)은 이스라엘전 페널티킥 득점을 포함해 3골 4도움을 올려 2019년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2골 4도움)을 넘어섰다.
또 U-20 월드컵에서 3번째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브론즈볼도 받았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현란한 개인 기술을 뽐내 적장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배준호(대전)도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미드필더로 이목을 끌었다.
이 밖에도 193㎝ 장신 공격수 이영준(김천)의 재발견과 대회 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렌트포드 이적설이 돌았던 수비수 김지수(성남)와 이번 대회 2골로 ‘골 넣는 수비수’란 애칭을 얻은 최석현(단국대)도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선수 시절 왼쪽 눈 시력을 잃은 어려움 속에도 놀라운 득점력을 발휘해 ‘샤프’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은중 감독도 지도자로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
무관심 속에도 묵묵히 어린 선수들을 이끌며 ‘원팀’을 만들었고, 대회 내내 한국을 괴롭힌 석연찮은 판정에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한국 축구를 이끌 보석과 함께 확실한 색깔을 지닌 지도자를 얻은 것도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