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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영변은 진달래가 피고 있는데
최창일 시인·이미지평론가
작성 : 2019년 03월 05일(화) 16:08 가+가-

김소월 시인은 국민 시인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의 회담장에서 거론되는 영변은 소월이 노래한 <진달래> 시속의 영변이다. 그래서 영변은 한국을 벗어나 세계에 유명해지게 되었다.
김소월은 국민 시인이라는 것은 불변이다. 한국인 귀화(歸化) 필기시험에 <진달래>의 지은이는 누구냐는 문제가 나온 적도 있다. 김소월을 모르면 한국인이 될 수 가없다는 것이다. 전 국민의 애송시 1위는 진달래꽃.
노래로 불러진 시가 가장 많은 시인이다. 남산을 비롯하여 13개의 시비(詩碑)로 가장 많은 비를 가진 시인이다.
교과서에 맨 처음 시가 실린 시인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김소월의 제대로 된 사진이 하나 없다. 1990년 당시 이어령 장관이 옥문성 화백, 서지학자 김종욱 씨와 셋이 연구하여 김소월의 초상화를 만든 것이 오늘에 김소월의 얼굴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의 애송시인은 얼굴조차 미상(未詳)인 셈이다.
소월은 1902년 평안도 구성군에서 태어났다. 자란 곳은 곽산군이다. 아버지 김성도는 1904년, 소월이 두 살 되던 해에 일본인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친척집에 음식을 싸들고 말을 타고 가던 길에, 철도 일을 하던 일본인들이 이 음식을 뺏으려고 김성도 에게 달려들어서 마구 구타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심한 폭행으로 심한 트라우마에 집안에서 나오지 않고 굶어 죽어 갔다. 김소월은 이런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경멸하는 양가감정에 휩싸였다고 한다.
소월의 할아버지는 광산을 하였던 것으로 보아 비교적 부유한 집안으로 보인다. 김소월 시인은 아들 넷과 딸 둘을 남겼다.
소월의 삼남 정호는 소월이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인 1932년 태어났다.
18세 때 6·25가 터졌다. 그의 어머니 홍단실은 ‘너만이라도 남으로 가라…’ 전쟁 때 그 길은 인민군이 되는 것 뿐 이었다.
그렇게 전쟁에 뛰어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인의 아들은 포로로 붙잡혔다. 인천형무소, 부산과 거제포로수용소를 거쳐 그는 반공포로로 풀려났다.
그는 그 후 국군에 자진 입대해 1955년 제대했다. 군 복무를 마쳤지만 갈 곳은 없었다. 철도청에 근무하던 친척의 주선으로 교통부에 임시직으로 취직했다. 월급이 쌀 한 가마니였다. 그 때 평생 반려자를 만날 수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시인의 아들은 반년이 안 돼 결혼반지까지 팔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짧은 생을 마친 아버지에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시인의 아들. 곤궁에 빠진 그는 1958년 동아일보 기자에게 자신이 소월의 친자(親子)임을 알렸다.
그래도 변한 것은 없었다. 홍익회에서 4년을 일한 뒤 나와 레코드 외판원을 할 때 미당 서정주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봤다.
미당은 그리 사는 소월의 아들을 안타가워 했다고 한다. 미당은 정호의 딱한 사정을 월탄 박종화, 시인 구상에게 전했다.
그들은 “소월의 하나뿐인 아들이 남에서 외판 일을 하는 걸 북이 알면 얼마나 악선전하겠느냐”며 당시 국회의장 이효상에게 추천서를 써주었다. 그 덕에 정호는 국회경비로 취직했다.
8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이번엔 아내의 신부전증이 악화된 것이다. 치료비 마련을 위해 남편이 택할 길은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에 기대는 것뿐이었다.
참으로 안타가운 것은 소월의 아들은 쇠약한 모습으로 쓸쓸한 세상을 살다가 아버지 곁으로 떠났다. 그가 가는 길에 국민의 시인 소월의 기념관 하나 없는 한국을 몹시 안타가워 했다. 그가 가고 나서야 서울 행당동에 소월공원이 만들어 졌다. 남산 길에 있는 소월시비는 소월의 시비로서는 처음 새워진 시비다.
소월의 오산 중학을 다녔고 김억의 추천으로 1920년 동인지 ‘창조‘ 5월호에 첫 시를 발표했다. 그 후 그는 5년간 154편을 썼다. 그의 화려했던 시기는 1922년이다. 그 해에 만 ‘먼 후일’등 30편을 썼던 것이다. 동아일보에 정호가 찾아갔던 것은 소월이 평북 구성(龜城)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한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소월은 지국의 실패로 술독에 빠졌다. 1934년 12월27일 이승과 하직을 했다.
소월이 노래한 진달래의 영변은 북한과 한반도 주변국 강대국과 남한은 6자 회담이 열리며 영변에 비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소월의 영변에는 금년에도 진달래는 피고 있을 것이다.
분명, 소월은 영변에 비핵화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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