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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인가?‘48인’ 인가?
김철수 주필.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작성 : 2019년 02월 24일(일) 16:18 가+가-

금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100년이란 세월이 주는 의미는 한 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
특히 3·1 운동은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지 9년 만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으로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인 사건의 날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1910년의 한·일 병탄(倂呑)을 한·일 합병(合倂)으로 잘못 알고 일제가 노리는 문화침략의 농간에 놀아나 한일합병으로 부르거나 잘못알고 있다.
한·일 관계에서 이 글자 하나가 갖는 의미나 우리 역사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3·1절 100주년을 맞아 꼭 집어 넘어가야 할 부분중에 하나가 이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통째로 삼키고 나서 국제사회에서 자기들이 침략자로 낙인찍힐까봐 조선과는 어디까지나 선린관계로 합병한 것이라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또 조선 사람에게도 일본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그렇게 말했다. 합병(合倂)과 병탄(倂呑)은 그 뜻이 전혀 다르다. 일본이 말하는 합병이란 뜻은 갑과 을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하나의 나라로 합치는 것을 말하고, 병탄이란 말은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네것 내 것이 구별 안 되게 한 다음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즈음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 어떤 관계로 합병되었는지 알아보도록 스티븐스 특사를 일본에 보냈는데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스티븐스를 교묘히 매수하여 한·일 관계는 병탄이 아니라 합병이라고 미 대통령께 왜곡되게 보고하도록 음모를 꾸몄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에 분격한 재미교포 장인환과 진명운 두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스티븐스를 저격함으로서 왜곡되게 보고 될 뻔한 거짓 사실을 사전에 막을 수 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합병이냐? 병탄이냐를 두고 주기 아니면 살기로 다툰 역사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져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은 일본에게 병탄을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여 년 동안 이 나라는 부끄러운 표현인 것도 모른 채 정규 학교에서 조차 합병이란 말을 가르치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흔히들 1919년 3월1일태화관에서 낭독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한 33인을 민족대표로 100여년 동안 가르치고 있고 잘못된 역사를 배워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독립선언서 낭독장소는 명월관의 분점인 태화관이 아니라 종로의 탑골(파고다)공원이었다. 2·8일 일본의 심장부 동경 YMCA에서 거행된 2·8독립선언서는 일본에 유학생으로 가있던 젊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우리 동포들 400여명이 한 몸 란뜻이 되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곧 바로 귀국한 유학생들이 전국을 돌며 영향력 있는 민족지도자들과 만나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기독교의 지도자 이승훈과 천도교의 지도자 손병희, 그리고 불교의 지도자 한영운을 중심으로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거족적인 민족봉기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거사 당일 실질적인 운동의 핵심세력인 학생연합회 측과 약속한 탑골공원에서의 선언서낭독을 사전에 아무런 연락조차 해주지않고 태화관에 미리 모여 선언서를 낭독해버리고 그 자리에서 서명 날인한 33인의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확연하게 밝혀지지 않고 역사는 이 33인을 민족대표로 비중을 둬 이나라 국민들이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이러한 이유로 태화관에 있지 못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날인하지 못한 15인을 지금이라도 민족대표로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알려야 하는게 100주년을 맞은 이날 우선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3·1운동의 주역인 민족대표는 당시 7월에 동아일보 신문에서도 민족대표 48인으로 기사화되었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도 48인의 운구가 같은 단지에 나란히 안장되어 있으며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 묘역에도 48인이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일인가 알수 있다. 3·1운동에 참여한 민족대표는 분명 33인이 아니라 48인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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