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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實事求是
고운석 시인·주필
작성 : 2018년 09월 03일(월) 16:16 가+가-
사전에 실사구시는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나와있다.
한데 240년 전 연암 박지원은 중국 여행길에 기와·수레·벽돌 등 청나라 문명을 눈여겨 보고 ‘열하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용(利用)이 있는 뒤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正德)을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넉넉지 못하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당시 조선의 지배적 이념은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이었다. 명나라가 망한지 100년이 넘도록 조선은 망한나라의 연호를 쓰며 청을 야만시했다. 국력이나 문명에서 청에 밀리면서도 북벌을 외치는 것은 굶주린 백성들에게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메아리였다. 연암은 공리공론만을 일삼는 조선 집권층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며 청으로부터 문명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의 기치를 내걸었다. 양명학을 대체하는 시대정신, 실학의 융성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하며 ‘실사구시’란 화두를 꺼냈다. 규제개혁, 기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실사구시적인 과감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학의 뼈대인 실사구시를 소환한 것은 진보·보수라는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 정치에 있어 ‘실사구시’란 말의 저작권은 아마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있을 듯 싶다. 김 전 대통령은 ‘서생의 문재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원칙을 중시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뿐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 벌 궁리를 하듯 현실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 대통령이 꺼낸 ‘이상과 현실 조화론’에 지지층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미 FTA협상 때 ‘장사꾼 논리’를 강조했다. 시민단체 노조 등 우군들이 저항했지만 ‘국익 최우선’이라는 원칙으로 밀고 나갔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로 규제개혁 첫발을 뗀 문 대통령도 지지층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재벌에 포섭됐다” “개혁후퇴”식의 반대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지율도 50%대로 떨어졌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한 것을 놓고도 시민단체들은 ‘거래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 ‘분배냐 성장이냐’는 분명 필요한 논쟁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가 호황인 가운데 한국만 나홀로 뒷걸음질을 치는 상황에서 진영논리에 집착하는 것은 백성의 빈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파 이익만 주장하던 조선 후기 풍경과 다르지 않다. 지금 안으로는 고용·투자에 경고등이 켜지고, 밖으로는 미국발 무역전쟁과 중국 기술 굴기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한국은 한때 기술에 있어 중국에 앞서 있었지만 규제장벽을 쌓은 탓에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핀테크 등 미래산업에 있어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요즘 중국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선진, 베이징, 상하이를 방문하는 IT기업들이 부쩍 늘고 있는데, 실학자들이 중국 문물을 배우려 북경을 드나들던 시대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최근 직원들과 상하이의 무인편의점 ‘빙고박스’, 온·오프 슈퍼마켓 ‘허마셴성’, 애플리케이션으로만 주문하는 ‘러킨커피’ 등을 탐방하고 온 한 IT기업 대표는 “페이혁명이 불러온 신유통에 깜짝 놀랐다”며 “IT강국이었던 우리가 어쩌다 중국 IT를 배워야 하는 처지가 됐는지 절망스럽다”고 했다. 신산업에 도전하는 기업인들은 “기업혁신과 실험이 자유로운 중국이 자본주의 같고, 규제가 발목잡는 한국이 사회주의 같다”는 말을 자주한다. 규제가 오죽 심하면 그러겠는가.
중국 기업들의 폭발적 성장은 등소평의 ‘실사구시’를 기반으로 한 개혁·개방이 출발점이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을 잘 살게 하는게 그만이라는 ‘흑묘백묘론’은 중국 실용주의의 뿌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좌우가 아닌 ‘실용’이다.
‘올바르게 살면서도 잘사는 것’이 시대정신이 돼야 한다. 규제개혁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슬로건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책 ‘운명’에서 한미FTA를 언급하며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시작도 국익, 끝도 국익이었다”고 쓰지 않았던가. 규제개혁 중심에 오로지 국익을 놓고 밀고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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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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