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만나는 첫인사가 “더워요. 더워도 너무 더워요 어떻게 사세요?”이다.
여름이야 더운 계절이고 의례히 더울 줄 알지만 연일 기록을 갱신하는 더위에 당분간 비소식은 없단다.
나라 전역이 열기로 뜨겁고 어느 곳 하나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늘을 찾아도 금방 주변 열기가 덮쳐 온다.
일본은 진즉 40도를 돌파했고 경쟁하듯 우리나라도 기상 측정 이래 최고의 온도를 기록해 40도를 넘은 곳이 등장했다.
‘무더위를 극복하는 인문학’ 터무니 없는 이야기인가 생각이 들기도 할테지만 피서방법을 요리조리 궁리하던 중 피서의 내공으로 인문학을 떠올렸다.
가뜩이나 무더위에 어쩌다 사람들로 열 받으면 더 덥다. 국정운영에 불평을 쏟다보면 어느새 땀이 솟는다. 여름만이라도 열 받는 일을 피하자.
열 받을 일에 끼여 들지도 말자. 불평 불만을 쏟아 놓으며 미쳐 쏟지 못한 불평 불만들을 가슴에 쌓다보면 이 무더위에 온열 조끼를 입은 꼴이 될 것이 뻔하다.
주위를 돌아보면 속시원한 일보다 답답하고 짜증난 일들이 많다. 이 여름만이라도 일일이 대응하여 감정을 토하는 일을 자제해 보자. 누군가 이런 고백을 했다.
좋은생각보다 안 좋은 생각을 하면 더 덥단다.
교만으로 가득하니 어느새 열도 함께 오르더란다. 사랑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애틋함을 품는 일은 상쾌한 일이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긴 하나 무더위 속에 짜증보다 아전인수 격으로 더운 김에 인격수양 할 수 있게 되어 더위가 덕이 되었다는 색다른 고백을 만들어 보는 지혜는 어떨까? 어느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녹아서 작아지는 비누와 같다고 했다.
비누는 사용할 때 마다 자기 살이 녹아서 작아지며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때마다 더러움을 씻겨 없어진다. 만일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기희생을 통해 이웃과 사회에 공헌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 같지만 어떻게든 자기 것을 아끼려는 인색한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는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는 삶만큼 숭고한 삶은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영이익보다는 고객이익 추구의 철학으로 미국의 백화점왕이 되었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인간관계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고, 동료애가 그렇고 전우애가 그렇다.
비누처럼 나를 희생해 상대를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삶,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삶이다.
희생하는 능력은 바로 사랑이라 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기꺼이 희생을 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한 삶에 대해 지혜서인 탈무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배우는 자세를 갖는 사람”이라 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라 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 이 모습 이대로 감사하는 사람이라 했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 한다.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다.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감사하는 사람들이다”라며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감사하는 사람은 편안한 사람으로 이웃이 안겨온다.
감사하는 동안 마음은 안정되고 여유로워지며 영혼의 산소가 발생한다.
감사가 메마른 마음은 사막이요 지옥에 비유할 수 있다. 소금이 녹지 않으면 맛을 낼 수 없듯 희생과 감사가 무더위를 녹이는 상큼하고 시원한 여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