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식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고무나무는 월드컵으로 세계인을 열광케 하는 축구공의 형님뻘이다. 장미는 향수와 수많은 화장품의 원천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만드는 그 중심에는 바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바람은 누구인가’
지구의 허파라는 바다를 움직이며 살리는 것들은 무수한 것들이 있다.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 만드는 파도다. 바람과 파도가 부부 관계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파도는 바다를 정화시킨다. 환경의 재해, 부유물도 파도에 의해 어느 곳으로 보내진다. 물을 뒤집어 플랑크톤을 키운다. 수많은 해초와 물고기의 영양분을 만든다.
모터라는 기계에 의하여 배를 이동하기 전, 바람에 의한 돛단배가 항로를 지배 했다. 돛단배는 바람이 아니면 무기력한 물체에 불과하다.
우리가 존경하고 성웅으로 추앙하는 이순신 장군은 파도, 다시 말하여 바람의 장군으로 규정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순신의 바다는 거북선이 존재한다. 거북선은 바다에서만 그의 기량을 발휘한다. 장군의 거북선은 바다와 일체가 되어 세계 해전이 인정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같은 해전의 전승(戰勝) 뒤에는 파도를 이해하고 이용하였다는 사실이다.
파도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에 하나, 중력파라는 것이 있다. 중력파는 표면파와 내부파를 말한다. 어떤 경우든 이는 진행파나 정재파로 분류 한다.
조석(朝夕)은 강제파로 일컬어지는데 조석이 달, 지구, 태양의 상대적인 움직임에 따라 결정되는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세계의 조석은 넓은 의미로 폭풍조석, 즉 기상학적 조석이라고 하는 해일과 같은 현상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같은 조석의 해일을 연구하고 파도의 넓이와 깊이를 이해하는 장군이었다.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 같은 근거를 남긴다. 장군은 늘 시간이 나면 한산도나 진도, 여수의 바닷가에서 사색을 하고 관찰 하였다. 어쩌면 토속 막걸리 잔을 기우리며 조석의 긴 시간을 기다리며 관찰 하였을 것이다. 바다의 조석은 절기별로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파도의 크기, 길이, 높이를 말한다. 장군은 이러한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면밀하게 파악하였던 것으로 추정을 해 본다.
물론 이러한 근거의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자연을 연구하고 바람의 존재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사색하는 나의 견해일 뿐이다. 장군이 나의 견해와 같다는 것은 자연을 보고 느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나무와 꽃들은 바람이 다녀간 뒤, 확연하게 생기를 더한다. 마치 영양제를 마신 듯, 건강한 율동을 보이기도 한다. 나무의 기지개는 바람이 일으킨다. 나무의 세수는 바람이 도와준다.
정원사가 나무와 바람의 상관관계를 알 듯, 이순신 장군은 바다와 파도의 존재를 깊이 이해했을 것이다.
바다의 수심이 깊고 얕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심과 파장을 나타낸다. 실질적으로 수심이 깊다는 것은 수심이 파장의 1/2보다 큰 경우다. 파장은 바람의 속도와 바다의 깊이에 의하여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이다. 오늘 날 같으면 과학의 장비로 컴퓨터라는 지능을 가지고 분석을 하면 금방 나올 것이다. 당시는 전자계산기도 없는 천연의 시절이다.
장군이 파도의 역량과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오로지 관찰의 판단이 전부였을 것이다.
정원사는 과수의 비료를 주거나 농약을 살포하는 날, 바람과 날씨를 살핀다.
농부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농약을 살포한다. 농부의 지혜는 스스로 터득을 한다. 이것을 우리는 경험이라 한다. 경험과 기술은 다르다. 기술은 오랜 숙련공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경험은 깊은 관찰과 시간이 요구된다. 바람을 안다는 것은 경험이다. 이순신 장군과 정원사가 바람을 아는 것도 경험이다.
속초에 가면 영금정이 있다. 영금정에서 듣는 파도소리가 거문고 소리를 낸다하여 영금정이라고 한다. 경주에 가면 파도소리 길이 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코스를 말한다.
영화 ‘파도에 던져버린 사랑’ ‘파도가 지나간 자리’ 라는 흘러간 명화는 파도라는 이미지를 넣어서 만든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파도야 파도야’라는 드라마로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저미게도 했다. 결론적으로 바람은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바다를 책임진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바람은 나의 팔 할을 키웠다’는 명시를 남긴다.
목포의 갓바위 바람은 나의 오늘을 키웠다.
바람이 존재를 묻는다.
“어머니의 아름다운 머릿결이 휘 날린다”고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