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매화꽃이 조심스럽게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고 있다.
이제 곧 정갈하게 흰옷을 입은 목련화도 뒤따라 꽃을 피울 것이고 벚꽃도 서둘러 뒤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계절은 이렇게 어김없이 자연의 질서를 어김없이 지키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좋은 방향으로 발전을 해가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이권과 욕심에 휩쓸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짐승만도 못하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으니 그야 말로가 심히 걱정스러울 뿐이다.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가 어느 곳을 막론하고 성한 곳 없이 총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지만 특히 정치계는 선두주자로 유별나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삶이 고달파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국가예산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각종선거로 인해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는 격으로 낭비되고 있고 거리에는 이마에 붉은 띠를 두르고 일터에서 뛰쳐나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근로자들의 파업시위는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주권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유리걸식하며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며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서럽고 비참한지 온 몸으로 겪어야했던 선열들과 조상들의 피눈물 나는 지난날 치욕의 역사를 벌써 다 기억 속에서 잊었다는 것인지 심장이 요동친다.
사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제도의 구조상 난맥과 미성숙으로 얼룩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세제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너무나 열악하다.
세금에서 대부분의 세목을 국세로 지정해놓고 지방세 항목이 빈약해 필요한 예산을 정작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태가 되어 구조적인 모순투성이다.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울산광역시 등을 재외하면 재정자립도는 절반조차 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은 중앙정부에 구속될 수밖에 없어 무슨 사업을 하려 해도 중앙정부에서 교부세나 보조금을 주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치적 쌓기나 보여 주기성 행사에 정신을 파는 경우가 많고 지방의회가 하는 일이 실질적으로 시민생활에 와 닿기 힘들다.
또한 중앙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틈을 타 지방 토호세력들과의 유착이 심해지고 무리하게 지방체를 발행하여 호화청사를 짓거나 감당하기 힘든 사업을 벌여놓고 나중에 중앙정부에 구조요청을 하는 황당한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런 상황을 두고 “지방자치는 2할 자치 밖에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고 꼬집을 정도다. 지방자치는 궁극적으로는 주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봉사해야만 하고 선거는 주민의 의사에 따라서 실시되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영토가 넓고 거리가 멀어 지방자치를 하지 않고서는 안 될 정도이거나 독일이나 프랑스, 그리고 영국처럼 지방분권의 역사가 오래된 지역의 경우에는 수백 년간 익숙해진 문화나 사고방식으로 부정적인 문제나 요소가 나타날 경우가 덜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선조 5백 년 동안 중앙집권체제에 워낙 익숙해져 서양권보다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중앙정치의 잘못된 패거리 정치를 근절시키는데 한목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악습과 폐습만을 닮아가고 있는 지방자치제라면 차라리 존속시킬 이유조차 없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될수록 주민간의 갈등과 폐허는 심해지고 아예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만을 양산시킬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국민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과 가슴을 짓누르는 심적 부담이 언제나 줄어들 것인지 희망보다는 체념과 절망감이 더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미 일정이 확정된 제7회 지방선거일은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고 출마자들의 살아온 흔적들을 보면 전과자 콘테스트를 보는 것 같은 희괴한 양상이 벌어진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우리가 뽑아야 할 대상자를 제대로 고르지 못하면 모든 고통과 책임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 결과에 대한 후회나 원망조차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