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이것으로 죽은 자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땅 속에 매장한다.
한데도 지식인까지 독설과 막말을 쏟아내고 있어, 5년 전의 독설까지 필자의 머리를 깨운다. 본디 독이 있는 동물은 체구가 작다. 덩치가 커서 적에게 밀릴 이유가 없다면 영양분으로 헛되이 독을 만들진 않았으리라.
어느 종이나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으니까.
그들에게 독은 약육강식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작은 체구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축내 만든 무기다.
그래서 독은 절박한 생존의지의 농축된 표현이다. 그런데 그게 상대에게는 다급한 위협으로 전달된다. 약함이 악함으로 표상되는 것. 독이 있는 것들의 진정한 비극성은 여기서 시작된다.
독설(毒舌)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이다. 독설에 대한 독설이다.
독을 대하는 덩치 큰 동물들이 불안이 그대로 녹아있다. 문자 그대로 풀면, ‘독이 있는 것들의 혀’,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작은 것들의 모진 혓바닥일 뿐이다.
세상에는 이 정의를 더 선호하는 측도 있다.
진정성을 담아 내는 그릇으로 독설을 선호했던 문필가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그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게 독설을 사랑한 작가는 루마니아 출신의 에밀시오랑이다.
그가 남긴 독설 한마디. “매일 존재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염세주의자는 ‘삶의 의미’가 만들어낸 희생자이다.” 이런 독설로 가득한 책이 <독설의 팡세>이다. 이렇게 듣기 거북한 말들로 점철된 그의 수많은 저서가 문학의 이름으로 읽히는 이유가 무언가?
<패자들의 애독서> <해체의 개설> <절망의 끝에서> 같은 저서 제목에 답이 있다.
그는 패자의 절망을 빚어낸 강자의 의미체계를 해체하는 용도로만 독설을 사용한다. 절망의 뿌리에 대한 원인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이 글을 읽고 긍정의 글보다 더 힘이 되고, 나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이 든다”고 적고 있다.
독은 강자를 겨냥하기 이전에 약자의 처지를 내 것처럼 품어야 생성된다.
독설이 문학이 되고, 종종 진정성의 발현으로 큰 공감을 불러 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막말 혹은 상말의 외형은 독설이 닮았다.
하지만 누가 어떤 의도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상말은 ‘상놈’이 하면 진정성의 표현일 수 있다. 억압받고 기만당한 울분이 거기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반’이 부지불식간에 하면 지도층의 교양 부족이고, 의도적으로 하면 상놈과의 친밀감을 연출하기 위한 정치적 세스처다.
어느 경우든 ‘양반’의 막말은 진정성은 없다. 독설에서 독을 빼버린 텅빈 껍데기, 카페인 없는 커피 같은 거다.
2012년 정치인들의 막말 퍼레이드는 ‘양반’의 막말이었다.
방송국 경비원에게 “니 까짓게…” 운운한 새누리당 홍준표 의원의 막말과 동료여성 시의원에게 “유통기한 지난XX” 운운한 경남도 김해시의원의 막말이 비의도적인 교양 부족의 산물이라고 치자.
그러나 “국민을 흑산도 홍어X로 아는가” 운운한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의 막말과 “MB급사(急死)” 운운한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의 막말은 정치적 제스처에 가깝지 않았을까? 후자의 이런 ‘막말정치’는 자신이 얼마나 대중의 처지에 공감하는 지 ‘진심연기’를 해 보임으로써 손쉽게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비록 자기 정파의 지지자들에게 제한되지만, 선명성을 부각시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속셈인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독설가는 ‘국민’이란 정체불명 절대 다수의 등 뒤에 숨어 가련한 어류의 생식기를 폄하하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또 아무리 미워도 ‘급사’라는 독극물을 개별적인 인격체의 얼굴에 직접 뿌리진 않는다.
그건 작은 것들의 생존을 염원하는 독설이 아니다. 한마디로 ‘막말정치’는 독설가의 진정성을 표절하고 대중의 좌절을 악용해서 손쉽게 정치적 이익을 편취하는 대가로 정치 공론장을 공허한 대립과 반목의 극한으로 몰아가는 ‘막장정치’다.
그런데 5년 전의 홍준표, 김태호, 김광진의 막말 후를 지금 살펴보니 정치판에서 그들 가는 길에 험난하다.
최근 바른 미래당이 야한 논평을 냈다.
제목은 ‘더듬어민주당’. 보나마다 더불어 민주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더듬어’라는 말이 풍기는 어감으로 미뤄 성폭력과 관련이 있다.
한국당 여상규의원은 대법원장을 지칭 “대법원장이란 작자”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의 막말에 박수치고 호응하는 시민이 있다고 한다.
이젠 이런 막말에 현혹되지 말고 그 독액을 바로쓰라고 권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