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에 화석연료 감축까지… 유전개발 줄줄이 제동 “전방위 경영압박”
호주 북서부의 액화천연가스(LNG) 채굴기지인 고르곤 현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장관이다. 무려 540억 달러(약 65조3400억 원) 규모의 고르곤 LNG 기지는 지구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는 국제 석유 메이저들이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유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에너지 업계의 거대공룡인 석유 메이저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고 있다. 그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해오던 대규모 유전개발 프로젝트들에 줄줄이 제동이 걸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14일(현지시간) 12년래 가장 낮은 수준의 유가가 지속되면서 대형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되던 석유 메이저들의 경영 방식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또한 각국의 대체 에너지 개발과 기후변화 협약에 따른 화석연료 감축 움직임을 지적하면서 석유 메이저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석유 메이저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개발을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심해 LNG 유전이나 경제성이 낮은 캐나다 샌드 오일 등의 프로젝트는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아니면 뛰어들기 힘든 사업이었다.
그러나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저유가로 메이저사들은 경영 타격을 입고 있다. 셸과 셰브론, 엑손모빌의 실적은 지난해 각각 -80%와 -76%, -18%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메이저사들은 대규모 에너지 개발 사업들을 속속 접고 있다. 요즘 같은 저유가 상황에서 대부분 개발 비용조차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투자금융회사인 모건 스탠리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투자허가를 기다리는 전 세계 230건의 에너지 개발 사업 중 고작 9개 프로젝트만이 “현실성 있는 후보군(realistic candidates)”으로 인정을 받았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멕시코만에서 개발하고 있는 ‘매드 독2’ 유전과 이탈리아 최대 석유기업인 에니(Eni)가 이집트의 조르 해안에서 추진 중인 가스전 개발 등 매장량과 채산성 모두가 보장된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들만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에너지 기업 전체로 볼 때 최근 4000억 달러(약 480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석유 메이저들은 저유가 국면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공급과잉 상태는 조만간 해소될 것이고, 유가는 올해 안에 다시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BP의 최고경영자(CEO)인 밥 더들리는 “저유가는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만일 석유 메이저들의 예측이 틀렸다면? 저명한 에너지 경제학자인 필립 벌레거는 “거대 석유 기업들의 시대가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 정책에 따라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앞 다퉈 다양한 대체 에너지들을 개발하고 있다. 셰일오일과 가스를 생산하는 중소규모의 에너지 기업들도 늘고 있다.
벌레거는 “브라질의 심해 유전 등 고비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은 많은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며 “앞으로 20년 동안 회수할 수 있는 투자금은 극히 낮은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의 강한 반등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