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율개입 제재 BHC 법안… 韓 1차 적용국 가능성 커
미국이 환율 조작국에 제재를 가하는 베넷-해치-카퍼(BHC: Bennet-Hatch-Carper) 수정법안 발효를 앞두고 있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무역법 1974를 수정한 ‘무역촉진법 2015’를 발의하고 상하 양원 통과를 거쳐 대통령 서명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BHC는 ‘무역촉진법 2015’ 중 교역상대국의 환율에 관한 규정을 통칭하는 법안이다. 미국의 주요 교역국 중 환율개입(의심) 국가들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확대하고 필요하면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나라가 미국으로 상품을 수출하면 이를 수출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은 불공정무역행위로 간주해 피해 규모 등을 조사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국제사회 제재뿐 아니라 통상·투자 부문에 미국의 직접적인 제재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무역과 외환, 통화, 산업 등 경제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김성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4일 “BHC 법안은 미국이 교역국의 불공정한 무역제도나 관행에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만든 슈퍼 301조의 외환버전으로 볼 수 있다”며 “상대 국가의 통화가치를 기준으로 해당 국가 전체에 법을 적용하고 있어 슈퍼 301조보다 더욱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무역법 1974를 수정해 1988년 발효된 슈퍼 301조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불공정무역 관행이 시정되지 않으면 상대국 수출품에 대해 반덤핑관세나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복조치를 할 수 있는 법안이다. 우루과이라운드협정의 다자간 정신과 자유무역의 기본정신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김 부연구위원은 “세계 거시경제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BHC 법안이 지난해 2월 발의돼 3개월 만에 상하 양원을 통과하는 등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지속에 따른 자국 내 불안과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2000년 이후 경상수지적자 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대를 전후로 고착화되고 있다.
BHC 법안이 발효되면 미국과의 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얻는 나라, 세계를 상대로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만드는 나라, 자국 통화를 저평가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개입을 하는 나라들이 분석과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중국, 대만, 이스라엘 등과 2000년 이후 지속적인 대미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세계를 상대로도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어 BHC 법안의 1차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외환당국은 미재무부에 의해 직접적인 외환시장개입을 하는 것으로 계속 의심받아왔다.
김 부연구위원은 “국제정치의 지형을 볼 때 중국과 이스라엘보다는 우리나라와 대만처럼 경제규모가 비교적 작고 정치적 영향력도 미미한 나라들이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며 “정부가 해당 법안의 잠재적 파급력을 사전에 점검하고 데이터와 새로운 연구결과에 기초한 외환·통상 외교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국제금융센터 등 관련 기관간의 공조체계를 확고히 해야 한다”며 “미국무역대표부와 유사한 기능을 했던 통상교섭본부를 부활시키고 외환·통상 연계 부문을 추가한 조직을 상설화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