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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은 언제나 1980년 5월이였다”
‘5월 광주’ 당시 계엄군 이상일 고은사진미술관장
30년간 5·18묘지 담은 사진작품 100여점 기증
작성 : 2015년 02월 26일(목) 16:24 가+가-
“제 시간은 언제나 1980년 5월에 멈춰있었습니다.”
30년 동안 광주 망월동 묘역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고은사진미술관장 이상일(60)씨는 25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재단을 찾아 “이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5월의 신부’ 등 지난 1985년부터 광주 망월동 5·18묘지의 모습을 담아온 사진작품 103점을 5·18기념재단에 이날 기증했다. 이씨는 “광주에 대한 빚이 있었다”며 기증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말한 부채는 ‘5월 광주’였다.
경남 산청 출신인 이씨는 군복무를 하던 중 1980년 5월 계엄군으로 광주에 파견됐다.
정보사령부 소속이었던 그는 총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사복 차림으로 ‘불순분자’와 ‘남파 간첩’ 색출을 위해 사진 채증 임무를 수행했다.
‘명령에 의한 임무’였지만 5월 광주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제대한 뒤 뒤늦게 2년제 사진전문대에 들어간 이씨는 1985년 5월 어느 날 한밤중에 혼자서 광주를 찾았다.
이씨는 “누가 알아볼까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두워지자 망월동 묘지에 갔다”며 “그 뒤로 1주일에 2~3번 밤중에 망월동을 찾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어 “그때는 찍고 싶은 사진이 광주였다. 당시 내 사진의 시작과 마무리가 광주였다”고 말했다.
그가 사진가로서 정체성을 자각하고 이름을 얻게 된 계기도 ‘광주’였다.
‘5월 광주’라는 사회적 주제, 계엄군 출신이라는 개인적인 화제, 미학적 평가까지 겹치면서 어느 순간 대단한(?) 작가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09년 동강사진상, 2011년 도쿄 니콘살롱에서 주최하는 ‘이나 노부오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도 ‘5월 광주’였다.
이씨는 “어느 순간 내 자신이 광주를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죄의식이 들었다”며 “그때 망월동 작품 중 나머지는 반드시 광주에 기증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야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뒷면에는 하나 같이 ‘80. 5. 이상일’이라는 자필 사인이 있다. 이씨는 “20~30년간 망월동 사진을 찍어왔지만 내게는 언제나 1980년 5월의 망월동이었다”며 “30년 만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광주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세력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이씨는 “80년 5월 19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채증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특수부대와 불순세력에 의한 폭동인지 사실 확인을 위한 임무였다. 결론은 말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던 일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나경택 전 전남매일 사진기자도 이씨와 함께 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담은 사진 130점을 5·18기념재단에 기증했다.
5·18기념재단은 조만간 공식적인 기증식을 가진 뒤 국내 지역별 순회전시는 물론 미국과 일본, 독일 등에서 해외전시도 추진할 계획이다.
/김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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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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