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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레로 하겠소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04월 27일(화) 16:28 가+가-
성신여대 근처에 르호봇이라는 카페가 있다. 주인 권사님은 부르기가 어렵다는 여론에 다시 작명하려했다. 르호봇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우물이름이다(넓은 곳. 창26:22). 부르기 좋은 카페작명을 부탁하기에 ‘수국’카페면 어떻겠느냐 즉흥적으로 말했다. 카페의 입구 양옆, 화단에 하얀 수국이 두 그루가 있었다. 사람의 이름은 의미가 중요하지만 가게의 상호는 보고, 외우기 쉬워야한다는 것이 보편이다. 강남 신사동에 가면 등나무집이라는 한식집이 있다. 이름을 뒷받침하듯 등나무 하나가 입구화단에 있다. 간판과 어울리지 않게 등나무는 작고 볼품이 없어서 속으로 웃은 적이 있다. 지금쯤 등나무가 무성해져서 상호와 걸맞게 되었지 싶다.
우리나라에 이름과 성이 사용 된지는 6세기, 삼국 시대다. 삼국 시대에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여지면서 성을 부르는 중국의 영향으로 성씨사용이 시작 되었다. 성(姓)은 임금이 하사하듯 내려주었다.
우리나라에 성씨를 내려준 최초의 왕은 왕건(877~943)이다. 당시 성을 가진 사람은 왕의 주변 각료나 양반들이었다. 서민은 성이 없어도 편하게 살고 있던 시절도 있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대개가 호를 하나쯤 가졌다. 추사 김정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호를 가진 문인이다.
무려 100여개에 달한다. 뛰어난 사상가지만 호에 관하여 별난 학자다. 호중에 완당과 추사만이 알려졌을 뿐, 대다수는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소월, 만해, 미당은 시인들에게 친숙한 호다.
그래서 많은 문인들은 호를 가지는 것이 정석으로 알았다. 추사 선생 시대에는 친구 간에 이름보다는 호를 부르는 것이 예의다.
댁호도 그런 류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 하나도 알리기 버거운 시대다. 그만큼 예술가, 문인도 많아졌다. 아호보다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것이 명예롭지 않느냐는 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호가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중광스님이지 싶다. 그의 호는 걸레다. 그가 걸레를 사용한 연유도 소박하다. 중광스님과 동문수학 하는 통도사 청청 스님이 배불뚝이 달마를 습작하며 대화중. 그림을 배웠는데 아호라도 하나씩 갖자 했다. 말하는 청청스님이 중광 스님의 방 모서리에 빗자루와 걸레를 발견. “소승은 빗자루로 하겠습니다.” 중광은 “그렇다면 나는 걸레로 하지“ 하면서 파안대소 했다는 이야길 중광스님이 기자와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기자는 중광에게 물었다. “스님은 미대를 나오지 않았는데 해외에서까지 한국의 피카소로 알려진 비결이 뭘까요” 중광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미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그들은 좋아서 그림을 그렸고 구지 따지자면 공방(工房) 출신이랍니다.”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하다보면 미대가 아니라도 예술가가 되는 법을 뜻한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히스토리만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국호는 고종(조선26대왕. 1852~1919)이 만든 이름이다.
대한제국에서 시작되었다. 고종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새로운 황제국(皇帝國))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이전의 국호는 조선이었다. 조선이란 이름은 자존심의 문제가 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조선1대왕.1335~1408)가 명나라에게 국가 이름을 간청하여 만들어 졌다.
명나라는 조선이라 이름을 주었다. 국호 하나 마음대로 짓지 못한 역사적 비극이다. 이렇게 조선이라는 국호가 유래되었다. 얼굴이 화끈하게 부끄러운 역사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피하고 싶다. 그런데 대학, 신문사 명칭이 조선이라고 자랑스럽게 쓰기도 한다.
참으로 우스운 것은 고종이 대한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반대의 여론도 있었다. 고종은 망한 국가의 군주지 않는가. 망국의 군주가 지은 이름이 불쾌하다는 여론이었다. 어떤 이는 대(大)자를 넣자는 것이 작은 나라가 대자를 넣는 것이 남사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정치하는 족속들은 분열의 근원님들이다. 늘 상대의 샅바를 붙들고 늘어지는 부류들.
우여곡절에 고종이 승하한 해, 1919년 4월 10일 저녁 상해에서 28명의 임시 의정원(지금의 국회)이 구성됐다. 이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기로 의결했다.
임시 정부는 독립이 되기까지 26년간 지휘 기관이었고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지켜왔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국호를 조선으로 부르게 하는 수모를 안겼다.
우리는 이렇게 국호 하나를 가지는데 곡절의 기록을 가진 민족이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국호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직해야만 하는 민족이다.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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