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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5·18을 말하다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04월 06일(화) 16:31 가+가-
“꽃은 사랑을 배달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배달하기도 합니다”의 대사는 ‘데이지’(2006년 상영)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다.
영화 속에서는 화약 냄새가 진동, 킬러가 등장하는 멜로 영화다.
꽃, 잎과 뿌리가 모두 사람을 치유하는데 쓰인다는 ‘데이지’ 꽃의 이름을 붙인 영화의 속셈은 뭘까?
의문 속, 그 영화처럼 2021년 5·18에 ‘데이지’꽃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작가들은 5월이면 작품을 통해 5·18을 말하려 했다. 그 숨 막히는 그날의 사건은 작품으로 말하기엔 늘 부족하거나 미완이 되기 일쑤였다.
과연 이번엔 좀 다를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영화의 제목, ‘데이지’ 꽃이 아주 조용하게 조심스럽게 등장했다. 20m의 길이에 ‘데이지’ 꽃밭을 만들었다. 작가 문선희는 5·18당시 돌잡이 였지만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의 제목을 붙여 그날의 상황을 전하려 한다.
광주의 비엔날레는 금년이 13회로 아세아 지역에서 가장 전통의 전시회다. 문선희 작가가 ‘데이지’를 통하여 80년의 5·18을 말하려는 것은 직접적인 말보다 꽃과 나무가 전하는 것들이 오히려 강렬하다는 의미의 상징일 것이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 라는 시는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1883~1931) 의 ‘결혼에 대하여’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무는 빛으로 자란다. 빛을 잘 받기 위해서는 간격이 필수다. 물리학에서 두 개의 입자가 가까울수록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이 커지는 만큼 밀어 내는 반력도 커진다. 반발력을 줄이려면 입자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둬야 한다. 세상에서 생각이 한쪽으로만 꼬이는 사람끼리 모이면 부딪히게 된다. 갈등(葛藤)이라는 말은 칡(葛)과 등(藤)나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칡은 왼쪽으로만 올라간다.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휘감는다. 둘이 얽히고 싸우는 것이 갈등이다. 칡과 등나무가 만나면 햇빛을 받지 못하여 숨쉬기 곤란하여 진다. 마치 인간사회를 상징하는 듯 흥미로운 나무들이다.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내 다시 보지 못하리./ 허기진 입을 대지의 달콤한 젖가슴/ 깊숙이 묻고 있는 나무/ 온종일 잎에 덮인 두 팔을 들아 올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무/ 여름이 오면 머리 한가운데/ 울새 등지를 이고 있는 나무/ 그 가슴에 눈이 내리면 쉬었다 가게하고/ 비가 오면 다정히 말을 건네주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 만들지만/ 나무는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다네.” 조이스 킬머 (Alfred Joyce Kilmer. 1886-1918) 시인의 ‘나무’라는 시다.
시인은 나무처럼 생각하고 나무의 놀라운 생명력을 통하여 사람에게 숲의 지혜를 전하려 한다.
사람은 한번 영면 하면 다시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나무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졌다. 씨앗이 잠든 상태에서 수 백 년을 보내다가 깨어난 사례가 있다. 1940년 독일의 공습으로 대영박물관에 화재가 났다. 147년 전 중국에서 채취한 자구나무 씨앗이 휴면에서 깨어났다. 성지 이스라엘엘, 마사다 요새에서 약 2000년 만에 발견된 대추야자나무의 씨앗이 싹을 틔워낸 적도 있다. 나무는 순환의 고리를 가졌다.
꽃을 통한 열매는 다시 땅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듬해 싹을 틔우고 다시 생명력을 가진다. 조이스 킬머가 ‘나무’에서 말하는 것은, 다시 소생하는 나무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영화 ‘데이지’는 빗발치는 총알이 난무하는 헐리우드식 액션 영화가 아닌 눈빛을 따라 날아가는 단 한방의 긴장감 넘치는 총격씬으로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액션의 표정을 그린 영화다.
5·18에 ‘데이지’ 꽃을 등장 시킨 문 작가는 ‘데이지’ 꽃의 표정을 통하여 각자가 생각하고 사유해보는 시간을 만들려는 노력일 것이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렸지만 5·18의 충격은 도무지 결말이 나지 않는다.
물론 제주의 4·3사건과 같은 충격의 아픔도 진행형이라는 쓰라린 현실이다.
인간의 사회는 늘 단순하지가 않다. 문 작가는 ‘데이지’ 꽃을 통해 숨겨진 아픔을 ‘화해’로 보듬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미다. ‘데이지’ 꽃은 내년이면 다시 핀다. 다시 일어서는 것들은 승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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