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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빗물을 마시지 않는다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01월 12일(화) 16:19 가+가-
2021년 새해 첫줄이다. 박강남 시인의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의 시집을 빨강 우체통이 받아놓았다. 시집 제목이 클래식하다. 책장을 넘기니 꽃의 붉은 정맥이 흐른다. 시집의 제목은 언어로 짓는 건축의 대들보.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에 나는 그만 멈추고 만다.
황순원(1915~2000) 소설의 <소나기>가 내리고, 자연에 속한 시인의 여고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집을 펼치다 정원을 바라보니 몆해전 섬마을에서 올라온 동백이 빼꼼이 붉은 미소를 짓는다. 저러다 서편제 주제가라도 부르다 순교라도 할 판이다. 시집을 펼치는 순간 마법처럼 눈발이 굵어지고 있다. 눈발은 바람 없이도 흩날리고 있다. 이 땅에 선한 것들은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것들이었구나.
인류학자 잭 구디(1919~ .Jack Goody)는, <꽃의 문화The Culture Flowers>에서 꽃이 인류사에 차지한 이론을 발표 한 바 있다. 꽃에 대한 인류의 사랑은 보편적이라 한다. 단 하나 보편적이지 않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종교적인 제의나 사회적인 의례에서 꽃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사람들은 꽃을 재배하지 않으며, 대화에서도 꽃에 관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경우도 드물다. 그들은 꽃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꽃 이후 열매에 초점을 맞춘다. 구디는 아프리카인들이 꽃에 관련된 문화가 없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는 그들은 꽃에 대해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꽃과 관련된 문화는 일종의 사치며, 아프리카는 그런 사치를 부려볼 여유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꽃을 재배되는 꽃의 원산지가 아프리카 꽃인 경우는 드물다는 분석이다. (개인 적인 소견을 덧붙인다면 원주민을 향한 분석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 새해, 꽃이 제목이 되고 꽃이 소재된 시집을 받음은 은총이다.
구디는 문화권의 우리는 꽃에 대한 애정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 이 애정은 어떤 조건이 무르익을 때, 즉 주변에 꽃이 널려 있고 가던 길을 멈추고서 향기를 맡을 여유가 있을 때 나타난다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라는 네 가지의 식물에 의하여 경제의 한축이 만들어 졌다.”(욕망하는 식물. 마이클 폴란Michael.Pollan)고 한다.
그 뿐이겠는가. 시인에게는 꽃은 관념(觀念)을 만드는 재료다. 시인에게는 꽃은 메뉴판이고 밥상이다.
“붉다 못해/ 맑다 못해/ 해를 닮았다// 겨울에서 봄까지 느릿느릿 걸어/ 깨달음에 닿는 순간// 툭! / 열반이다” (박강남 시인의 동백. 시 전문)
욕망하는 것들은 모두가 붉다 했던가. 시인 앞에서 툭 하고 떨어진 동백은 시끄러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떠나고 만다.
분명 그 동백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소망을 위하여 기도 할 것이다.
박강남 시인의 동백은 빗물을 마시지 않는다. 대지(大地)를 위하여 흘려보낼 뿐이다.
“시인의 눈은 황홀한 열광 속을 날아다니며, 하늘에서 대지를 내려다보고, 대지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지.”(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제5막 제 1장)문구가 언 듯 생각난다.
박강남 시인이나 셰익스피어나 시인의 시선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릴케는 프랑스의 가로수 아래서 시를 쓰고 슈베르트는 라임나무아래서 위로를 받았다. 박강남 시인은 동백이 피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가는 길을 배웅하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 땅의 죄를 대속(代贖)해 하는 것이 짠해서다.
“시를 쓰는 시간은, 오롯이 나와 노는 시간이다. 7년 만에 다시 부끄러움의 닻줄을 풀어 거룻배 같은 시집 한척, 바다로 떠 보낸다. 표류하게 될지 모를 두려움과 설렘으로 푸른 수평선을 향한 뱃길이 외따롭다.” 박강남 시인의 서문이다. ‘외따롭다“의 끝 구절은 구도자의 길이련. 그러나 언어의 군단을 거느리고 삶이 돋아나는 굳건한 시인의 모습이 읽힌다.
시집을 받으면 서문을 감상하는 것은 시인의 내면의 집을 구경하는 흥미다. 산사에 들려 새벽 약수를 마시는 느낌도 든다. 시인의 서문은 간결하다. 그렇지만 그 여운은 보신각 종소리다.
새해 벽두 박 시인이 보내준 시의 즙을 먹고 마법의 힘을 받는다.
창밖에 눈발은,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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