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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사이의 미술관에 들리다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1년 01월 05일(화) 16:35 가+가-
요즘처럼 막막할 때는 시집을 보내준 시인이 반갑다. 김화순 시인의 <계절사이 길을 놓다> 시집을 받았다. “시의 앞에는 숲이 있고, 시 뒤에는 사막이 있다는 말이 시훈(詩訓)이다”라는 시인의 서문에서 먼 북소리가 들린다.
시집의 제목처럼 계절사이에 길을 놓는다는 것은 가능할까? 아인슈타인의 양자론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과학의 논리가 아닌 시학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의 가시화다. 김화순 시인이 내 놓은 첫 시집인데 미학의 안내가 만만치 않다.
벌은 1kg의 꿀을 만들기 위해 560만 개의 꽃송이를 찾아 나선다. 벌은 꽃의 화분(花粉)을 먹고 토해내면 과당(果糖)의 꿀로 변화 시킨다. 오묘한 구조다. 벌이 꽃을 찾아서 꿀을 만드는 것과 같이 시인은 수많은 언어를 골라서 희디흰 백자를 구워낸다. 요리사는 푸성귀나 고기, 생선과 같은 재료가 맛있는 요리로 변하듯 시인은 언어로 삶의 길을 찾아 나선다.
희곡과 소네트 시를 쓴 셰익스피어는 “기쁠 때, 막막할 때, 사랑하고 이별할 때, 외로울 때를 가장 심리학적으로 표현한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작가가 아니다. 심리학자다.” 라고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말한다.
셰익스피어 운문을 번역한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꼭 그렇지 않다는 전제)로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저급한 내용, 편지나 포고령, 또는 정신 이상 상태 등을 드러낼 때는 산문으로 쓰고 운문(시)으로는 격식을 갖추어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때 쓰인다고 말한다.
문학에서 장르 간 무슨 구분이 있을 턱은 없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산문과 운문에서 구분하여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라는 규정이 든다.
윤경희 여행 작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필름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왜 필름카메라를 사용할까.
“필름 카메라를 쓰는 여행 작가에게 질문을 한다. ‘필름 카메라를 쓰시네요?’
질문의 뜻은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라 굳이 필름 카메라를 쓰느냐는 의미에 가깝다. 물론 매번 필름을 갈아 끼우는 것도 번거롭고, 현상이며 인화며 유지비도 만만치 않는 게 사실이다. 필름의 질감이나 깊이가 더 좋다는 식의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반했다는 모호한 말 외엔 표현할 길이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보다 더 좋다기보다는 다만 콘탁스 아리아가 좋은 것뿐이다. 우연히 아리아로 찍은 사진을 보고 첫눈에 반해 무작정 남대문에 가서 카메라를 산지 벌써 7년이 넘었다.“ (윤경희 여행 작가가 콘탁스 아리아와 함께 하는 이유)
1998년에 출시된 코닥스 카메라는 여성을 타깃으로 만들어 무척이나 가볍고 손안에 쏙들어온다고 한다. “처음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을 때 유난히 크고 명징하게 울리던 ‘찰칵’ 소리는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순간중 하나라고 들려준다. 아리아를 함께 하면서 비로소 사진 찍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필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날씨, 시간 등에 따라 변한다. 필름도 마찬가지다. 필름 또한 일종의 환경과 마찬가지라 그때그때 입자와 색감을 다르게 표현해 주는 인자가 된다고 한다.
윤경희 작가에게는 아리아 카메라가 언어로 보인다. 시인이 마음의 중심 어느 한적한 터에 언어 사이에 사유를 놓고 초록의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는 것과 유사하다.
계절 사이에 길을 놓는 김화순 시인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말을 비껴가고 귀의 문을 닫고 고요를 걷는다.
김화순 시인이 보는 이 땅의 날씨는 늘 나빴다. 대지 위에 닿을 듯 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그 어디에도 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화순 시인만이 계절 사이 길에서 참회하듯 눈발을 받아준다.
바람 속에 앉아/ 위대한 정신들/ 만나곤 한다/ 노을을 향한 깊은 의미의 시선/ 왜 이렇게 바람도 불도 물도 땅도/ 시리고 아플까/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지만/ 마음이 아프면/ 바람사이에 길을 놓는다/ (김화순, 시. 바람의 길. 전문 )
김 시인은 바람에게도 길을 놓아주는 신비를 갖는다. 김 시인의 시는 독특하다. 시의 갈피에 건강한 힘줄이 불끈 솟아 있다. 즐거움과 괴로움 등 마음의 움직임을 빈틈이 없이 정돈해 준다. 살아가는 데 따뜻한 위로와 격려다.
모르긴 해도 김화순 시인이 이 땅의 민족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초록일 것이다. 그래서 계절 사이에 길을 놓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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