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0년 12월 02일(수) 16:37 가+가-

일본의 ‘하루야마 시게로’라는 사람은 글을 쓰는 작가인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30년 동안 책을 쓰면서 사람이 건강하려면 피곤하지 않게 하라!
적절한 잠을 자라! 식욕을 절제하라! 화를 내지 말라! 두뇌를 계속적으로 사용하라!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여섯 가지를 지키라고 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에 이 사람은 “뇌내혁명”이라는 책을 쓰면서 정말 인간에게서 필요한 것 한 가지를 더 첨가했는데 그것은 ‘마음의 평안’이라고 했다.
이 마음의 평화가 건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5%로 보았는데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평화라는 말에는 팍스(pax)와 샬롬(shalom)이 있다.
팍스는 로마인들이 추구하는 평화로 물질적인 만족감이나 법,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로마는 이런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넓은 땅을 정복했고 지배하며 하루도 피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고 결국 그 힘과 물질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샬롬이 의미하는 평화는 로마 식민백성인 히브리 민족의 것으로 내적이며 정신적인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성공한 자나 실패한 자들과도 ‘샬롬’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늘날 구해야 할 평화는 팍스가 아니라 샬롬이다.
샬롬의 평화가 우리 삶속에 넘쳐야한다. 언젠가 평화를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공모전이 있었다.
어떤 화가는 절묘한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갖춘 풍경을 그렸다. 그 풍경에는 투명한 호수, 흐르는 시내, 소와 양떼들이 풀을 뜯는 풍요로운 목장, 나뭇가지 위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흰 구름은 창공을 가로질러 산허리에 그림자를 수놓고 있었다. 그 그림은 평화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을 탄 그림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바다 한가운데에 노출되어 있는 바위에 거친 폭풍우와 큰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거친 허리케인 앞에서 곤경에 처한 배 한 척이 심하게 떠밀려 다니고,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흑암을 이루며 사나운 폭풍은 노를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바위 꼭대기 조그마한 틈새에 비둘기 한 마리가 조용히 둥지를 틀고 앉아 새끼들을 부드러운 날개로 덮어서 엄청난 폭풍 가운데서도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이 바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요 우리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방울뱀은 치명적인 송곳니를 가졌지만 다른 방울뱀과 싸울 때는 독이 나오는 송곳니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자나 늑대도 영토 내의 주도권쟁탈을 위해서 싸우지만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
평화라는 단어의 ‘평’은 심장 두 개가 나란히 공존하는 평화의 이념을 나타낸다. ‘화’는 입(구) 속에 밥(화)이 있다는 ‘경제적 평화’를 의미한다. 공동체정신이 곧 평화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나의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평화 가운데 살아가야한다.
모나코라는 아주 작은 나라 국민들은 음악을 사랑하며 범죄가 없는 곳이다. 중요한 예로 유명한 국립교향악단이 있는데 ‘사랑과 평화의 노래’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단원은 85명. 이 나라 군인은 82명이다. 교향악단 단원 수가 육해공군을 합친 수보다 많다.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당신이 언젠가 본 일이 있는 평화로운 정경이 담긴 추억의 그림들을 마음속에 그려보라.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의 추억은 마음에 치료약으로 작용한다.
마음의 평화는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20세기는 인류가 싸운 100년 전쟁의 연속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만 해도 100개국에서 130건의 군사 분규가 있었고 3500만 명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1000만 명이 죽었고 2차 대전 6.25 월남전 걸프전에서 약 5000만 명이 희생되었다. 인류는 20세기 100년 동안에 이데올로기보다 자유가 낫다는 것, 자원보다 두뇌가 낫다는 것, 대립보다 공존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립은 ‘내가 너보다 우월하니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 는 교만에서 나온다. 그러나 공존은 ‘피차 돕고 함께 의지하여 함께 잘되자’는 형제애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상처를 받고 복수할 마음을 품는다. 물질적으로 넉넉해졌지만, 관용과 배려는 작아지고 있다. 사람들의 내면에 평안이 없고 서로 평강을 북돋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삶의 바탕인 평화를 추구하는 일을 뒤로 미룬다. 지난 3000년 동안 지구상에는 3300여 차례의 전쟁이 있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매일 3만5000여명이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세력 확장을 위해 전 세계가 쓰는 돈은 연간 5500억 달러다. 전쟁 준비하는 자들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전쟁을 통하여 부모를 잃은 고아들, 자녀를 잃은 부모의 한 맺힘, 신체 일부분을 잃은 장애인들의 고통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화평 하는 사람은 나라를 아름답게 세우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도 나라를 아름답게 세우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