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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위로의 시대
김철수 아동문학가.美CUC대학교 부총장
작성 : 2020년 11월 29일(일) 16:45 가+가-
최근 마음의 상처와 치유를 주제로 한 <사이코 이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적이 있다.
드라마의 내용은 발달장애를 지닌 형을 돌보는 정신병동 보호사로 근무하는 동생과 그 병원장의 괴짜스러우면서도 친절한 원장의 일상생활이다.
이 병원의 원훈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프냐? 나도 아프다. 죽고 싶냐? 난 더 죽고 싶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로 극 중에 나오는 병원 이름도 ‘괜찮은 병원’이다.
수많은 말 가운데 괜찮다는 말은 언제라도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말이다. 예기치도 않았던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지구촌의 인구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균에 공포감을 갖고 마스크를 쓴 채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지 못한 채 집안에 콕 박혀 1년 내내 시달리다 보니 우울증이나 조울증 증세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지금이야말로 위로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힐링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상처로 가득 찼었다는 점을 대변해주는 말로 치유가 무엇보다 시급함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들은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춰주는 거울과 도 같은 역할을 한다.
불행이나 나쁜 현상은 늘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다. 세월호 사고를 접하면서 받았던 충격이나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몰락해가면서 탄핵과 함께 감옥으로 가야하는 현실을 우둑커니 앉아서 지켜보아야 했던 국민들의 가슴은 이미 멍들데로 멍들었고 깊은 상처를 입을수 밖에 없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성범죄의 충격과 여성혐오를 비롯한 각종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이를 겪고 지켜본 구성원들의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있을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치유를 필요로 했고 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문화코드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공명시켰다. 그런데 그 힐링이라는 단어가 요즘은 위로라는 주제로 그 모양을 바꾼 것 같다.
물론 힐링의 메시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힐링보다는 위로의 메시지가 더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두 단어가 비슷한 정감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위로와 힐링은 완전히 다르다. 힐링이 상처를 감싸주고 치유하게 해주는 해결책이라면 위로는 상처가 아니라 절망에 대한 해결책인 것이다.
요즘 위로란 낱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말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무차별로 방출해내는 대량의 절망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반영해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출간된 책들의 제목 가운데 ‘그냥 괜찮아지고 싶을 때’ 라든지 ‘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혼자 살아도 괜찮아’ 등의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이러한 제목의 책들은 위로가 필요한 절망의 다양한 분야들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절망의 표현이나 절망의 결과인 무기력과 불안, 우울과 압박감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위로의 메시지가 넘쳐난다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절망이 넘쳐난다는 뜻과 같은 맥락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절망은 젊은이들이 겪는 절망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어려워 계약직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청년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봐도 평범한 삶을 영위할 능력을 얻지 못하는 청년들, 외부로부터 나를 짓누르는 절망이야말로 미래가 없는 청년들에게 위로는커녕 “네가 무능해서 그러는거야.!” 라는 질책에 무력감과 불안감이 삶을 뒤덮어버린다. 그런데 이 절망으로부터 희망의 출구로 빠져나오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어렵기만 하다.
엄마들은 아기가 불안으로 놀라 울음을 터트리며 패닉상태에 빠졌을 때 다른 특별한 조치보다도 그저 달려가 품에 안으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달랜다. 그제야 아기는 진정되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괜찮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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