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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느 정도의 여백이 있을까
최창일 시인.문화이미지심리학자
작성 : 2020년 11월 17일(화) 16:34 가+가-
아인슈타인이 어느 기자와 커피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만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기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와의 귀한 약속이다. 기자는 자책감으로 진땀을 흘리며 아인슈타인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뜻밖의 말로 그를 편안하게 안심 시켰다.
“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할 일은 어디에나 있답니다”.
아인슈타인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항상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다. 그것은 틀에 박힌 사고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삶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현대사에 여러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은 여백을 가진 삶이다. 자신의 능력을 알았고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기회를 끓임 없이 찾아서 이용하고 수많은 난관에도 여백을 가지고 대했다.
요즘 우리사회의 돌아가는 모습과 많은 비교가 된다. 전체를 보는 것보다 부분을 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사회구성원의 모습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이다. 토론을 하여도 진취적이고 미래적인 모습이 요구된다. 다양한 채널에서 토론자는 각자의 답안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말하는 곳곳에는 송곳이 들어있다. 그 뿐이 아니다. 언어에는 독이 묻은 화살을 가졌다. 주어진 시간에 악령의 화살을 마구 만든다.
불굴의 의지로 고난과 역경에 맞서 자신의 삶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품이 넓은 지도자의 부재 현상이다.
모두가 길이와 폭을 정해놓고 이김 질이다.
어느 소설가의 말이다. 체신부를 끝으로 남은 생을 소설가로 살아가기로 했다. 소설가는 선비들의 집단으로 이해하였다. 막상 중심에 들어와 보니 생각했던 동네가 아니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비단 그 집단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무기여 잘 있거라’ 작가 헤밍웨이는 자존감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어느 평론가는 그가 자존감이 강했기에 자살을 했을 것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그 자존감의 헤밍웨이가 어느 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 헤밍웨이는 무릎을 조아리며 “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넘을 수 없다“는 겸손의 고백을 했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입에서 이렇게 타인을 인정하는 표현이 그리 쉽지 않다. 그 후 많은 작가들은 헤밍웨이와 같이 타인의 작품을 인정하는 태도가 형성되었다. 이처럼 가슴이 넓은 한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가슴을 넓혀주었다.
우리가 잘 아는 법정 스님은 버리고 떠나기의 명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늘 책을 보고 그곳에 두고 왔다. 법정이 하루는 가을맞이 대청소를 하였다. 청소를 하다가 자신이 그토록 버리고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다기(茶器)가 열여섯 개가 나왔다. 법정은 다기를 좋아했고 선물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어떻든 법정은 구석구석에서 나온 다기에 크게 반성했다는 구절이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책을 더 이상 펴내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의미로 저 세상으로 떠나며 절판을 유언으로 남겼는지 의문이다. 책의 이익금을 가난한자에게 쓰도록 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의 큰 집을 짓는 스님을 감히 짐작이나 하겠는가마는.
오늘 아침 젊고 유능하게 비추어진 스님이 뉴스에 오른다. 평소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잠언서를 펴내어 무려 3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다. 좋은 집에 사는 생활모습이 방송에 나간모양이다. 남산이 보이는 뷰가 좋은 집이라고 한다. 언행일치가 아니라고 이곳저곳에서 손가락질이다.
어제 저녁 소주 자리였다. 한국에는 여백의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증오의 문화가 한국에 커가고 있다는 외국특파원의 취중 언골(言骨)이 아프다. 10여 년 전 한국에 왔을 때는 이처럼 증오의 문화가 광장과 나부끼지 않았다.
월드컵의 여진이 남아있던 시절에 방문했던 특파원으로 보여 진다. 어느 사회나 증오의 문화는 존재하는 법.
분명 우리에게는 여백의 문화 민족이 아닌가. IMF에는 금붙이로 강을 건너는 다리를 놓았던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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