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걷기위해서 태어났을까?. 여러 나라, 또는 국내의 여행지를 기록한 여행서가 그렇다 쳐도 『걷기예찬』에 관한 책이 헤아릴 수 없다. 걷기의 결론은 걷는 자는 살고, 누운 자는 죽는다는 것. 자칫 걷기 예찬으로 오해할 법도 한데 걷기 예찬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걷기에는 발로만 걷는 것이 아니라 눈과 마음으로 걷기도 한다.
나온 지 수천도 더 된 노래가 지금도 우리 마음에 걷는 것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 오백년 전에 살았던 시인들이 우리와 똑 같이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노래했다.
관습도 다르고, 주변풍경도 다르고, 먹고 입고 노는 방식도 모두 다른 곳의 노래가 오늘까지 걷고 있다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다.
다름 아닌 『시경』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노래집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천 년에서 이천 오백년 까지, 약 오백여 년 동안 민간에서 부르던 노래를 엮은 책이다.
옛날 중국에는 각 지방마다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풍속은 어떤지 조사하기 위해 중앙에서 노래를 채집하는 관리를 파견했다. 이것을 보아도 중국의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관리가 채집한 노래를 모아 엮는 책이 『시경』이다. 중국에서 법무부 장관을 5개월 정도 지낸 공자가 『시경』을 정리하고 유교 정신에 맞게 다듬은 것이 오늘의 형태의 노래를 외우는 것을 교양으로 삼았고 유학자들은 『시경』을 위대한 경전으로 여겼다. 『시경』은 처음에는 시(詩)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를 넘어서 『시경』(詩經)이라고 높여졌다.
중국에서는 『시경』을 모르면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 오늘 날에도 중국의 지도자는 『시경』의 시를 외우고 연설에 인용을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고 있다. 시진핑이 한국에 와서도 한시(漢詩)를 인용한 기록이 있다. “순풍에 돛을 단다”라는 시다.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미국에 방문 중에도 과감한 한시를 인용하였다. “반듯이 정상에 올라 더 낮은 산을 둘러보리라”. 오늘 날 중국과 미국이 무역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내용을 접하면서, 시진핑의 시가 트럼프에게 불쾌하게 작용 하지 않았나 싶다. 시의 내용을 보면 마치 언젠가 미국이라는 산을 내려 보는 날이 온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어지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해석임을 부연하여 둔다.
“시인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다. 살아서 천상의별을 생각하고, 죽어서는 지상의 꽃으로 남는다. 그래서 시인을 동경하는 지도 모른다.” 권일송 시인의 말이다. 그러면서 권 시인은 “음화식물, 한 시대의 정서를 대표하고 치열하게 모국어 속에 침잠하는 선비를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시인의 탄생은 별이 하나 탄생한다고 한다. 시인의 죽음은 별이 하나 사라 진다”고 황금찬 시인은 표현하기도 했다.
『시경』에서 말하는 시는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 기뻐 떠드는 환호, 서글퍼 내쉬는 한숨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서 오래된 『시경』의 노래들이 지금도 우리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한 뼈저린 시간이 있었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의 병원에서 생체실험으로 이십 칠세의 나이로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에서 낙화(落花)하는 별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윤동주시인을 일컬어 『시화무』라고 부른다. 시화무의 뜻은 언어의 꽃이 무한대로 피운다는 순 우리말이다.
시는 신명이고 울음이고 그리움의 아련함이다. 시는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시는 끝없이 사람의 마음을 걷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