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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유학생들이 불사른 민족혼

김철수 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작성 : 2019년 02월 10일(일) 16:06 가+가-
지난 8일은 3·1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2·8 독립선언 선포 100주년을 맞았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8일 일본의 동경 YWCA회관에서 가진 한국 학생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항일학생 독립운동의 최고봉으로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을 받은 재일 항일유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명의로 최팔용, 송계백, 김도연, 김상덕 등 11명의 대표위원이 서명을 하고 400여명의 유학생들이 모여 이광수가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백관수가 낭독함으로 일본의 심장부인 수도 동경의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전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 쾌거였다. 이 운동은 마침내 국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그해 4월 중국의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산파역할을 한 이광수, 최근우, 김상덕 등은 2·8 동경YWCA선언의 주도자들이 되었다. 이렇게 일본의 동경유학생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2·8독립선언의 비화를 보면 1919년 1월쯤 일본에서 유학생 대표인 송계백이 춘원 이광수가 쓴 ‘독립요구 선언서’초안을 자신의 모자 챙 속에 숨겨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와 곧 바로 보성중학교 선배이자 일본 유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현상윤을 찾아갔다. 현상윤은 1년 전 동경유학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중앙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후배인 송계백이 숨겨가지고 온 ‘독립요구 선언서’ 초안을 자신에게 내 보이며 선언문을 인쇄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활자와 운동비용을 마련해달라고 요청을 받았고 현상윤은 평소에 독립을 위한 민족봉기를 염두에 두고 있던 천도교가 이 일의 주축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모교이자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중학교 교장 최린에게 송계백을 데리고 찾아가 일본 땅 동경유학생들의 계획과 필요한 조치를 보고하게 된다. 당시 천도교는 최린과 오세창, 권동진, 세 사람이 교주인 손병희를 보좌하고 있었기에 송계백이 일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손병희에게 내 보이자 ‘어린 학생들이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다는데 우리가 어찌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있겠느냐’며 곧 바로 천도교 최고 간부회의를 열어 이 궐기를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이에 현상윤은 최남선과 연락하여 동참해 줄 것과 선언문을 기초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뻐하며 재동에 있던 최린의 안방에서 성공을 기원하는 은밀한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현상윤은 잠시 고향에 내려갔다가 올라 온 송계백에게 유학생 독립선언문 인쇄에 필요한 국한문 활자 수 천자를 최남선이 경영하는 신문관에서 구하고 운동비 3천원은 정노식에게 얻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또한 기독교와 연결책임을 맡은 현상윤은 정노식과 함께 김도태를 정주로 보내 이승훈을 모셔 오도록 하고 최린, 이승훈, 함태영은 한용운, 백용정과 만나 불교계까지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한편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와 파리강화 회의 및 국제연맹에서 한국을 비롯한 약소민족대표의 발언권을 인정해야한다는 보도 등을 접하고 재미 동포들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원조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국정부에 제출했다는 보도를 접한 재일 유학생들이 웅변대회를 열어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등 10여명을 선출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실행위원회에서는 조선청년독립단을 급히 결성한 뒤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송계백을 국내로, 이광수를 중국 상해로 파견한 뒤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및 공사관과 일본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2월8일 급기야 동경기독교청년회관에서 400여명의 유학생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것이 바로 2·8 독립선언이다. 2·8독립선언은 청년과 학생들의 항일투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국내외에 수많은 독립단체가 조직되면서 기미년 ‘3·1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나라를 되찾는 일에 있어서는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서 모두 목숨 걸고 동참했다는 우리 민족의 대동단결을 역사를 통해 100년이란 세월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다시 되돌아볼 수 있다는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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