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이 교류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마음이 고립되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흐르는 것이고 마음이 흐르는 것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청종은 상대방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지를 못한다. 이유는 자기의 생각이 마음의 귀를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고이는 물과 같아서 마음이 더럽고 추한 것에 머물게 된다. 반대로 마음의 교류가 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지혜가 오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수가 있다.
마음에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만나는 맛을 느끼게 된다.
악기 중에서 오보에 플루트와 같은 관악기들은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소리가 나온다. 사람의 마음도 비워져야 다른 사람의 소리를 받아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가 있다. 비운다는 것은 유익되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비워지는 것은 곧 채워지는 것이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소통(疏通)을 비울 허(虛), 잊을 망(忘)에 비유했다.
나를 비워야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채울 수 있고, 상대에 대한 좋은 감정은 기억하되 나쁜 감정은 잊어버려 선입견을 없애고 상대방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소통은 ‘막힌 것이 트이다’는 소(疏)와 ‘통하다, 연결하다, 왕래하다’는 뜻을 지닌 통(通)이라는 두 글자가 합해서 구성된 것이다.
그릇은 비워지는 순간에 주인이 채우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행악의 종자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악한 생각 음란과 거짓과 미움 질투 이러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살도록 끌고 간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어두움에 지배당하고 살아 왔다.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어두움이 떠나고 밝은 빛이 와서 거룩함과 의로움과 선한 것으로 마음을 채워서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게 한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관심 없이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내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지 현재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파멸과 고생의 길인지 평강의 길로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창조주의 마음을 만났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창조주의 사랑은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바꾸는 힘이 있다.
‘자살’을 반대로 읽으면 ‘살자’이다.
자살하려고 한 이유는 소망이 없기 때문일 것이고 ‘살자’라고 결심한 이유는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망은 마치 산소와 같다.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이 있으면 산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전도서 9장4절) 산개가 죽은 사자를 무서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산자가 죽은 자를 이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창조주의 마음을 만나기 전까지 죽은 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마음을 닫고 고립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것은 내가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다. 그러나 참된 생명을 담으면 소망이 만들어지고 강한마음이 만들어진다.
큰 용사요 존귀한자인 군대장관 나아만은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문둥병에 걸려서 절망과 고통 속에 있었다. 그러나 전쟁의 포로 된 작은 계집아이에게는 소망이 있었다. 작은 계집아이는 나아만의 아내에게 소망을 심고 아내는 남편에게 소망을 심어서 문둥병을 낫게 하였다. 문둥병이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어서 작은 계집아이의 마음에 있는 소망이 나아만의 인생을 고통과 괴로움에서 건져내어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게 변화시켜 주었다. 행복한 삶은 많은 부와 명예 권세를 얻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참된 생명이 왔을 때 기쁨과 감사 밝고 의로운 것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