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이 연결되었을 때 생동감 있는 사고를 하게 된다. 씨앗도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이 있듯이 인간의 생각도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두 가지가 존재한다. 생명이 있는 생각은 참된 사랑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만나서 마음이 연결되면 그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살아 있는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빅터 프랑클은 아우슈비츠수용소 생존자이면서 정신분석 의학박사이다.
홀로코스트로 악명 높은 그 곳에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수용소에서의 일상을 생각보다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희생자의 한 사람이면서 그의 눈높이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 원망을 보내지 않고 누구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정말로 정직하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수용소에서 횡포를 부리던 간수들, 동료 수감자 중에 카포로 뽑혀 같은 동료를 더 힘들게 하는 사람들조차 그는 자기 인생 그림에 조용히 포함시킨다. 그리고 관찰한다.
그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를. 그는 한 올의 털조차 남지 않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다 빼앗긴 상태를 경험해본 사람이다. 그리고 털 한 오라기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조차 인간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얘기해준다. 그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자유이다.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독일군의 지배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지만 아내와 사랑을 하고 교수가 되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마음은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마음이 자기의 틀 안에서 나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마음이란 감옥에 갇혀 있으면 죽음이 온다는 것을 알면 벗어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프랑클은 수용소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아내와 딸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 사랑의 힘이 죽음과 절망을 이길 수 있었다. 3년 후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아내는 죽었지만 아내와의 사랑은 마음에서 지속되었다. 수용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고 마음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마음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마음의 여행을 포기한 것이지요.
마음이 연결되려면 현재 내 생각은 틀렸다는 결론이 나와야 하고 1차적인 자기 생각을 무너뜨리는 경험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기능이 만들어 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마음의 여행을 가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강한 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마음에 설계를 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지만 자기가 자신을 위하는 사람은 어두운 인생을 설계하게 되고 어둡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아름답고 행복한 마음의 설계는 참된 사랑을 만나서 그 사랑을 받을 때 그릴 수가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세상 어떤 부모도 자식이 불행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와의 사랑의 힘은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 나에게도 아내와 두 딸이 있는데 가족의 사랑이 어려움을 이기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지은 적이 있다. 설계를 하고 건축을 하는데 절망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환경들이 밀려올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는 순간 절망에서 벗어났고 좋은 날이 온다는 꿈을 갖게 하고 마음에 그리던 상상이 현실로 바꾸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속에서는 어두운 것만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밝은 것은 생명이 있는 곳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그곳에 마음이 연결되어야 그곳에서 만들어진 마음이 내 마음을 밝게 만들어 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마음을 여는 것이 쉬워졌고 열린 마음은 많은 은혜를 입을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설계를 못하면 잘하는 사람에게 의뢰하면 되듯이 내게 힘이 없으면 참된 사랑을 가진 사람에게 의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려움과 고통을 이기는 힘을 공급받아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