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향은 호남가의 첫머리에 나오는 함평(咸平)이다. 이곳에 6·25 한국전쟁 이후 함평읍교회에서 야학으로 시작된 사립중학교(함평광인중학교)는 필자에게도 모교인 셈이다. 고향떠난지 20여년 만에 다시 돌아와 모교의 국어교사와 음악교사로, 그리고 교감으로 근무할 때는 지금으로부터 만 40년이란 세월이 지난 1979년이었다. 자식들을 가난과 무지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2녀4남의 자식들을 남겨놓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홀어머니는 하루하루 어린자식들을 배곯지 않게 해야 하는 절대 절명의 현실 앞에 무겁고 힘든 가장의 역할을 하루하루 감당해 오면서도 오로지 신앙과 자식들에 대한 소망으로 34살의 청상과부의 삶을 재혼하지 않고 힘들게 살아왔다. 그리고 어린 6남매에게 늘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면서 살더라도 공부는 한다.’라는 말씀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50여년이란 세월이 지나자 우리형제 6남매는 여러 사람의 은혜를 입으며 모두 당당히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필자와 필자의 손위 형님, 그리고 장녀인 큰 누님은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행과 구제를 나름대로 해오며 지내게 되었다. 30대 청상과부의 고달픈 어머니의 삶은 사회를 위해 떳떳하게 활동하는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 그리고 또 그자녀의 자녀인 증손자와 증손녀까지 보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시다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96세를 사시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항상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철이 들고 특히 부모에 대한 공경과 후회는 그 부모가 안 계실 때에야 깨닫게 되는지 아쉬울 뿐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안 계신 요즈음은 어느 새 울보가 되어 지난날을 후회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게 되어 이러한 감정을 그때 마다 한 편의 시로 옮겨놓곤 한다.
‘6년 전 세상을 떠나신 / 어머니의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난다. / 96세를 일기로 저 하늘나라에 먼저 가셨지만 / 눈물과 한과 고난의 세월로 보내신 어머니의 삶이 / 왜 이제야 내 가슴에 이토록 깊이 전해올까? / 살아생전 예쁜 색동저고리 / 그렇게도 입고 싶으셨지만 / 30대 청상과부로 어린 6남매를 책임져야했던 / 그 무거운 짐 때문에 / 마음속에만 간직하신 채 살아오신 사연을 /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야 뒤늦게 알게 됐으니 / 어찌 자식으로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으랴 /오늘도 찬 서리 내리는 어머니의 무덤가에는 / 노랗게 활쫙 핀 국화꽃이 만발했고 / 꽃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오실 것 같은 / 어머니를 생각하다 또 다시 눈물이 앞을 가린다. / 철이 없던 어린 시절엔 / 내 욕심만 채우기 위해 소리 질러 울고 / 세상물정 알만큼 자란 뒤에는 / 속상해서 잘도 울었지만 / 이제야 나이 먹고 철이 들다 보니 / 어머니의 그 사랑이 고마워서 울고, / 지난날의 잘못이 후회스러워 울고 , /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고 ,/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어 / 아예 어머니란 말만 나와도 두 눈은 수도꼭지가 되는 울보가 되고 말았다.
11월이 저물어가는 지난주 토요일 필자에게는 아주 반가운 손님들이 방문했다. 자식과 같이 사랑하는 광인중학교 제자들이 40년 만에 스승에 대한 감사함을 가슴에 안고 좋아하는 선물을 양손에 든 채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창들끼리 서로 연락을 취해 모처럼 큰 마음먹고 필자를 방문한 것이다. 필자가 이 제자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할 때는 국가경제도 밑바닥이었고 중학교 공부도 의무교육이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교육비를 절감해야하는 가정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정규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그나마 고등공민학교인 함평광인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던 때였다. 특히 농번기에는 ‘농가일손 돕기’라는 명분으로 이른 아침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바로 보리를 베게나 모를 심기위해 논 밭으로 나가 하루 종일 뙈약볕에서 뒹굴어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렇게 마련한 경비로 학급비를 충당하거나 졸업기념 엘범 제작비에 보태 써부모님께 경제적인 부담을 조금이라도 드리지 않기 위한 자구책의 하나였다.
이날 옛 스승을 찾아 먼 거리를 직접 달려 온 5명의 제자들은 서울에 사는 박옥님과, 시흥에 사는 채명숙, 경남 김해시에 사는 하미옥, 전남 구례에 사는 장주님, 그리고 목포에 사는 김매숙 등이었다.
필자의 눈에는 여전히 15세 또래의 여학생들로 비춰졌지만 어느새 제자들도 5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오히려 고맙고 감사함으로 가슴에 간직하며 산다는 제자들의 마음이 첫눈이 내리는 서울을 출발하여 어린 시절 고향땅과 옛 스승을 찾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주어 너무나 고마워 제자들을 떠나보낸 후에 또 한 번 울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