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의미는 누려야 할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나에게 찾아오는 죽음이나 질병 재앙을 이길 수 없어서 더 이상 좋은날이 없을 거라는 불신 때문에 고통 속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사망이라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이별을 해야 하고 모든 좋은 것을 잃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진시 왕이 불로초를 구하려 애쓴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은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슬픔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참된 진리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참된 기쁨은 슬픔을 당하면서 얻는 것이어야 하고 참된 평안은 큰 고통을 맛보면서 얻어야 합니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의 날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만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피해 다니는 동안 세월은 물끄러미 사라져 갑니다.
슬픔이 없는 곳, 고통이 없는 곳, 절망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길은 있습니다. 시선을 높여 슬픔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 건너편이 보입니다. 몸이 아프면 통증 때문에 원인을 알고 조기 치료가 가능하지만 통증이 없는 병은 대처할 준비가 안 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고통이 인간으로써 감당하기에 한계가 왔을 때 고통이 변하여 평안이 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슬픔이 있기 때문에 기쁨을 필요로 합니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의 소중함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한 것도 좋은 것입니다. 가난이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부자 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가난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망한 적이 없는 부자는 불행한 부자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를 비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두운 밤이 있어야 합니다. 가로등 밑에 있는 식물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은 슬픔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슬픈 인생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참된 기쁨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진정한 행복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무익한 인생임을 발견하여 자기의 손을 관 밖으로 내어놓게 하면서 생을 마치게 됩니다.
평안은 영생을 얻고 행복한 삶이 왔을 때 찾아옵니다. 평안이 있는 사람은 평안을 주는 일을 합니다. 참된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일을 합니다.
사람이 건강하기 위해서 공기, 물, 수면, 음식물, 4가지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좋은 것을 취해야 건강하게 사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본분을 알아야 참된 진리를 알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인간은 신경세포라는 뉴런이 1000억 개나 되는데 천재인 아인슈타인이 보통 사람의 두 배인 약 7%를 사용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 3.65%만 사용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이 능력을 사용했느냐 아니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은 끓는점에서 단 1도가 부족해도 절대 끓지 않습니다.
물을 수증기로 바꿔놓는 것은 바로 1도의 차이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에는 이러한 임계점이 있고 하나의 상태가 다른 상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임계점을 넘어야 합니다.
물이 끓는 점 온도에 도달해야만 끓는 것처럼, 인간의 임계점은 한계를 인정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