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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도 봄은 오는가?
김철수 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작성 : 2018년 04월 29일(일) 16:33 가+가-
역사적인 2018년 4월27일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에서 서로 만나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11년 만에 가진 역사적 회담이다.
제1차 회담은 2018년 1월 첫 남북회담인 고위급회담과 차관급 실무회담이 바로 평화의 진행된바 있다.
그리고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지난 1·2차 남북 정상회담은 모두 북한의 평양에서 열렸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판문점이란 곳에서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하는 순간이었다.
판문점은 어떤 곳인가? 옛날 어느 임금이 지방나들이를 나가 경기도 개성 동남쪽 20리 지점의 사천이란 냇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냇가에는 물을 건너는 다리가 없어 임금님 일행이 물을 건네지 못하고 난감해하며 주춤거리고 있자 이 관경을 지켜보던 마을의 백성들이 집집마다 자기 집 대문짝을 뜯어다가 임시로 다리를 놓아 임금님 일행이 냇가를 건너게 했습니다.
그 후 이곳은 ‘널빤지 다리’를 놓기 위해 ‘문짝’을 뜯은 마을이란 뜻에서 ‘널문리’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 마을은 1951년 개성에서 열린 6·25전쟁 휴전회담이 그해 10월 이곳으로 옮겨오면서부터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되었다.
회담장소로 선택된 곳은 널문리 마을의 주막을 겸한 구멍가게 앞 콩밭이었는데 마침 이 회담에 중공군이 참여하게 돼 개개 국어를 공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널문리 가게’를 중국어로 표기할 마땅한 글자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 ‘널’을 ‘널빤지 판(板)’자로 대치하여 마을 표기를 ‘판문(板門)’으로 하고 거기에 ‘점(店)’자를 붙여 ‘판문점’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1년 9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우려곡절 끝에 1953년 7월27일 전문5조36항으로 된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되었다.
한반도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만들어놓은 비무장, 비전투지역으로 동서의 길이는 248km이며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쪽 2km지점과 남방한계선, 북쪽 2km지점을 북방한계선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이곳은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되었다.
쌍방 협정에 의거하여 이곳이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경비를 담당한다고 해서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지역 안에서는 양측 경비병들이 공동경비를 위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는데 지난 1876년 8월18일 도끼만행사건 이후부터 군사분계선 위에 폭 50cm,높이 5cm의 시멘트 구조물을 설치하여 양측 경비병이 상대방 지역으로 넘어갈 수 없게 되었으니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공동경비구역이 아니라 분리경비구역이 된 셈이다.
마을은 하나인데 널문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등 세 가지로 불리는 이곳은 7천만 우리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위해 또 다시 다리를 놓아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잇는 마을임에 틀림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에 판문점에서 만나 올해 정전선언과 함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에 전 세계의 시선이 모두 집중 했고 두 정상의 입에 쏠렸다.
‘평화의 집’은 어떤 곳인가? 판문점공동경비구역중 주로 민간부문의 회담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판문점내 자유의 집으로부터 13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 3,300제곱미터의 3층 규모의 석조 건물로 행정구역상 소재는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이다.
이번 4·27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인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판문점이야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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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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