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은 기존과 동일합니다. 미국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현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월풀만 이득을 보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정부가 미국 정부에 다시 한 번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이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열린 ‘세탁기 세이프가드 공청회’에서 세이프가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적극 표명한 것.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 수입 급증으로 자국내 제조업체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덤핑 등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아도 자국내 업체가 심각한 피해를 보면 관세인상이나 수입량 제한 등을 통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무역장벽 조치 중 하나다.
존 해링턴 삼성전자 전무는 “삼성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2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우리는 미국 제조사인 동시에 장기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서 판매할 세탁기의 생산기지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 지역으로 옮기고 있어 ITC의 저율할당관세(TRQ) 권고안에도 반대하지는 않지만 하루 만에 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월풀도 탑로드 세탁기 생산기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완전하게 옮기는 데 3년이 걸렸다”면서 “우리도 소매점과 소비자들을 위해 일부 물량을 수입해 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폐점한 미국 유통매장 시어스 사례가 증명하듯 세이프가드는 월풀에게만 높은 시장 지위와 힘만 줄 뿐, 소비자들은 선택권을 제한받고 높은 가격으로 세탁기를 살 수 밖에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LG전자 측은 “월풀의 ITC 제소 등 무역법을 악용하는 행위는 경쟁에서 우위에 서려 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삼성과 LG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세탁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세이프가드는 불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내년부터 삼성과 LG의 북미 시장 세탁기 수입 비중은 30%에서 4%로 축소될 예정”이라며 “세이프가드 발동은 미국인의 일자리와 경제를 위협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해 11일 자국으로 수입되는 삼성과 LG의 세탁기에 대해 월풀의 의견을 전부는 아니지만, 적잖이 반영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삼성과 LG 세탁기에 대해 120만대를 초과하는 물량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권고안을 발표했다. 일률적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저율관세할당량(TRQ)를 설정했다.
이는 삼성과 LG가 제안한 145만대보다는 적은 분량이지만 양사가 매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세탁기를 넘는 물량이다. 또 TRQ 120만대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세탁기 전량을 뜻한다.
한국 기업을 비롯해 미국으로 세탁기를 수출하는 모든 국가에 적용이 된다는 의미다. 물론 수출 물량의 대다수는 삼성과 LG가 차지하고 있다. 이에 120만대까지는 선착순으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삼성과 LG로선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앞으로 고율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 현지 생산 체제를 가속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삼성과 LG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세탁기는 연간 200만대 이상으로 금액으로는 약 10억 달러 수준이다. 양사는 한국과 중국, 태국, 베트남, 멕시코에서 세탁기를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삼성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3억8000만 달러, LG는 테네시주에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세탁기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은 연산 100만대 규모로 내년 초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의 미국 세탁기 공장은 드럼세탁기, 통돌이 세탁기 등을 연간 100만대 이상 생산하는 규모다. 당초 완공 시점이 2019년 1분기로 예정됐지만 이를 내년 하반기로 앞당기기 위한 사전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USTR은 공청회 결과를 바탕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세이프가드 조치를 권고하게 된다. 그는 ITC의 권고안을 받은 지난해 11월22일 이후 60일 이내에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와 수위를 결정하게 된다.
/민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