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80년 5월 광주에게 빚을 진 것처럼 광주도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또 다른 위르겐 힌츠페터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11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로 인해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1980년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취재해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독일 기자(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일본특파원)를 김찬호 광주트라우마센터 팀장(전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이 처음 만난 건 지난 2000년, 5·18민주화운동 20주년 행사로 치른 한 학술대회 때였다.
김 팀장은 “당시에는 민주화인사 초청 행사에 온 외국인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힌츠페터가 누구였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된 건 이듬해 독일에서 열린 5·18 학술대회를 찾았을 때다. 힌츠페터와 1980년 5월 그를 광주로 보냈던 파울 슈나이스 목사가 학술대회에 참석, 발표자로 나서며 자리를 빛냈다.
김 팀장은 “슈나이스 목사의 아내가 5·18 때 서울에 있었다. ‘광주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슈나이스 목사가 힌츠페터를 광주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둘이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5월, 힌츠페터가 심장질환으로 쓰러진 뒤였다. 힘든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힌츠페터는 병상에서 ‘내가 죽으면 광주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가족들에 남겼다.
이 이야기가 5·18기념재단과 광주에 전해졌지만 힌츠페터의 유언은 가족묘에 묻고 싶어 하는 가족들의 반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힌츠페터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도움을 준 건 김 팀장이었다.
그는 힌츠페터와 가족들에게 “손톱과 머리카락, 유품을 주면 보관하고 있다가 광주에 묻겠다”고 제안했다.
김 팀장은 “제안을 받은 힌츠페터와 가족들 모두 좋아했다. 2005년 5·18 25주기 때 광주를 방문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정말 예쁜 편지 봉투에 담아 정성껏 포장한 뒤 5·18기념재단에 맡겼다”고 회상했다.
이후 김 팀장은 힌츠페터와 전화나 이메일로 안부를 물었다. 힌츠페터의 자료가 5·18기록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도 김 팀장의 역할이 컸다.
김 팀장은 “인터뷰를 하면 까칠했다. ‘천생 기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진지했고 의문을 가졌다. 연설문 하나도 정말 꼼꼼하게 썼다”며 “하지만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광주에서 연락을 받으면 목소리가 밝아지고 정말 좋아했다. 항상 광주에 갈 날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힌츠페터는 지난해 1월 향년 7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광주에 가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유품이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 안장되면서 “광주에 묻히고 싶다”던 소원은 이뤄졌다.
또 그가 그토록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5·18의 진실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37년 만에 다시 빛을 보고 있다.
김 팀장은 “힌츠페터가 광주에게 준 큰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여기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힌츠페터 뿐만 아니라 당시 광주를 취재했던 수많은 외신기자들이 있다. 세상이 80년 5월 광주에 큰 빚을 졌지만 광주도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 또 다른, 제2·3의 힌츠페터를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작곡가였던 故 윤이상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작곡가 윤이상은 5·18 소식을 전해들은 뒤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해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김 팀장은 “전두환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윤이상씨를 국내로 초청했다. 하지만 그는 전두환에게 ‘5·18묘지에 가서 절하며 참회하라. 그러면 가겠다’는 말로 거절했다. 광주가 기억하고 잊어선 안 되는 분들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힌츠페터에 대한 추모 역시 현재에 만족해선 안 되면 광주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망월동 묘역에 추모비 하나 세운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5·18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힌츠페터 거리를 만들어, 그들의 제자와 가족 등이 광주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뿐만 아니라 광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분들을 기억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자원을 활용해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 힌츠페터와 그들이 광주에 남긴 유산을 헛되이 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 토박이인 김 팀장은 지난 1999년 10월, 공채 1기로 5·18기념재단에 들어와 재단의 국제사업을 이끌어온 ‘5·18 국제화’의 산증인이다.
기념재단 사무처장을 역임했던 그는 현재 광주트라우마센터 연구기획팀을 이끌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국가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과 치료, 연구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이제 완전한 광주 사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국가 폭력에 희생된 분들의 치유가 중요하지만 일베 회원 등의 5·18 폄훼와 왜곡은 이들을 다시 힘들 게 하고 있다”며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보다 더 안전하고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시는 5·18과 같은 비극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5·18 정신을 현대적 의미로 계승하고 함께 나눠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성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