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과 함께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저물어간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제62회 현충일 기념과 6·25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을 맞게 된 금년 6월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국가안보가 염려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실험과 시도 때도 없이 쏘아대는 미사일 발사 실험 등으로 인한 불안이 한반도정세와 맞물려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고 이대로 두고 볼 수 만 없다는 판단에 유엔에서는 단호한 조치를 연이어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을 맞아 온 나라와 국민이 잊지 않고 고마워해야 할 나라가 있다.
1951년 전쟁 발발 시 바로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황실 친위대를 중심으로 편성된 전투부대원 600명을 파병해준 에티오피아이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들은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연 인원 6,037명이 5회에 걸쳐 한국전쟁에 참전했는데 강원도 춘천지역에서 남하하는 중공군과 무려 253차례나 전투를 벌려 253회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123명이 전사하고 600여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단 1명의 포로도 없었다. 당시 셀라시에 2세 황제는 한국전에 참전하는 병사들에게 “싸워서 이기든지, 죽기까지 싸우라!”는 단호한 명령을 하여 보냈던 것이다.
그 무더운 사막에서 낳고 자란 그들이 추운 겨울에 한국에 도착해 싸워야했으니 기후와 환경 또한 이기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또 하나의 적이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1935년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고 저항했으나 결국 패전국이 되고 말았다.
그때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제네바 국제연맹에 가서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에티오피아를 도와달라고 호소를 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작은 도움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셀리시에 황제는 에티오피아의 젊은이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키며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 1941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엔이 설립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유엔에서 “우리가 힘들 때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와 같은 나라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힘을 모아 약한 나라를 도와주자!” 라는 ‘집단안보’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엔은 셀라시에 황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 ‘집단안보’는 세계평화를 향한 진보적 첫 걸음을 떼게 한 위대한 결과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 후 첫 번째로 발발한 전쟁이 공교롭게도 6·25 한국전쟁이었다.
셀라시에 황제는 ‘집단안보’를 주장하며 유엔에 한국을 즉각 도울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왕실 근위대였던 ‘강뉴부대’를 즉각 한국전쟁에 파병키로 했다. 강뉴란 말은 에티오피아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 란 뜻과 ‘초전박살’ 이라는 뜻이다. 셀라시에 황제는 ‘강뉴부대’를 한국전에 파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해왔던 세계평화를 위환 집단안보를 실천하기 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른 것이니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한 후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는 16개국 참전국가운데 가장 용감하게 싸웠다.
셀라시에 황제는 안타깝게도 지난 1974년 공산주의자 맹기스투 소령의 쿠데타로 살해를 당하고 시신까지 모욕을 당하고 그 후 16년 동안 에티오피아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하는 바람에 나라경제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권력을 쥔 맹기스투가 북한과 친해지면서 한국전쟁 참전자와 가족, 그리고 후손들까지 적국을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축출시키고 재산을 몰수하며 온갖 박해를 하는 바람에 숨을 죽이며 숨어살아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참전생존자 200여 명이 최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1950년 당시 우리나라의 국인소득이 약 70달러일 때 에티오피아는 3,000달러나 되었지만 현재는 우리나라가 27,000달러나 되지만 에티오피아는 700달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난한 상태이다.
에티오피아는 1960년 로마올림픽 대 황실 친위대 소속 육상선수인 비킬라 아베베가 맨발로 마라톤에 도전 금메달을 따면서 전 세계에 감동과 관심을 갖게 한 나라이기도 하다.
2017년 6월23일 국내 언론보도에 의하면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가운데 단 3명만 살아있으며 그 후손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적 박해를 피하여 우리나라에 난민으로 정착중이라고 한다.
국가보훈처는 구가의 보훈정책이 미흡한 나라의 참전외국인과 그 가족들에게도 보훈정책을 확대적용 시켜 보은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