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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인화’ 개척한 우봉 조희룡과 신안 임자도
이흑암리서 3년간 유배생활…독창적 예술세계 정립
오두막 ‘만구음관’, 남종화 산실 운림산방과 견줄만
“남종문인화 중심의 수묵화비엔날레 한축 검토 필요”
작성 : 2017년 01월 10일(화) 17:16 가+가-
“전남 진도에 ‘남종문인화’의 산실 ‘운림산방’이 있다면, 신안 임자도에는 우봉 조희룡의 ‘조선문인화’가 잉태한 ‘만구음관’이 있다”
전남도가 수묵화비엔날레를 통해 ‘남도문예 르네상스’ 부활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조선문인화’를 개척한 우봉 조희룡(1789~1866) 선생의 예술혼이 깃든 신안 임자도가 주목받고 있다.
임자도는 조선후기 중국풍의 정통 ‘남종문인화’와 한 축을 이루며 ‘조선문인화’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개척한 우봉 선생의 유배지이다.
우봉 선생은 1851년 7월 당대의 대표적 세도가문이었던 안동 김문으로부터 추사 김정희의 심복으로 지목돼 임자도로 유배온다.
임자도의 남쪽 바닷가 마을 이흑암리에 오두막집을 짓고 3년간 머물렀으며, 이 오두막집이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짖는 집’이란 의미의 ‘만구음관’이다. 우봉은 이 곳에서 화가로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기량의 완숙미를 더해 절정의 경지에 오르면서 ‘조선문인화’의 틀을 마련했다.
당호가 있는 그의 그림 19점 중 8점이 이 때 이 곳에서 나올 정도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했으며, 묵죽법(墨竹法)과 괴석도(怪石圖) 그림에 일가를 이뤘다. 이런 의미에서 우봉이 머문 임자도의 ‘만구음관’은 추사의 남종문인화 화풍을 잇는 진도의 운림산방과 견줄만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추사의 ‘남종문인화’는 ‘문인화에는 책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가 넘쳐나야 한다’는 중국 남종화의 정신세계 ‘서권기 문자향’의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우봉의 ‘조선문인화’는 머릿 속의 이념보다는 손의 기예를 중시한 ‘수예론’으로 다소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서·화의 형식은 수용하되 솜씨를 강조한 우봉은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화풍을 벗어나 백성들과 친숙하고 중국의 이념이 탈색한 그림을 그렸다. “매화에 취해 일생을 보냈다”는 그의 ‘매화도’ 사랑은 화려하고 섬세한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유배 초기 자신을 추사의 무리로 분류한 것에 억울해 하며 두문불출하던 우봉은 이후 임자도의 풍광에 반해 화폭에 담기 시작하면서 화가로서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만구음관’의 주변을 그린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와 ‘방운림산수도’, ‘괴석도(怪石圖)’ 등은 그의 새로운 화풍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괴석도는 그가 임자도의 바위로부터 새로운 화법을 터특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우봉은 ‘화구암난묵’과 ‘우해악암고’, ‘수경재해외적독’, 한와헌제화잡존’ 등 4권의 책을 통해 임자도에서 스스로 터득한 예술혼을 저술했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강봉룡 원장은 “우봉에게 임자도 만구음관은 새로운 화법을 시험하고 자신의 그림세계를 집대성하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한 곳”이라며 “그가 머무른 만구음관은 비록 3년의 짧은 세월이지만 ‘남종문인화’를 넘어서는 창조적 예술혼을 펼친 산실이었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이어 “우봉의 이러한 업적을 높이 평가해 후대에서는 묵장(墨場)의 영수(領袖)로 부르고 있으며, 남도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라며 “남종문인화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남도 수묵화비엔날레의 또 다른 한축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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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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