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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여, 회고록이 아닌 참회록을 써라
최창일 예능시인·한국문인협회 대변인
작성 : 2016년 10월 18일(화) 17:42 가+가-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회고록이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2007년 노무현정부가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을 기권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북한에 물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반국가적 행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총공세다.
반면 야당은 “전형적인 색깔론”이라며 차단에 나서고 있다.
정치인에 의한 정치적인 행위에 국민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렵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수출이 벽에 부딪혀 있다.
경제에 가장 민감한 영업용 택시운전사들은 더 이상은 택시도 못하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경제는 빨간불, 바닥을 기고 있다. 국민 체감경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의 심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자신들의 정략과 정치적 대권행보에만 온갖 신경을 쓰고 있다.
2015년에는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이명박 전 대령의 회고록이 큰 파장을 몰고 온 바도 있다.
“자화자찬, 남 탓 자서전”이란 소리가 나왔다.
도대체 이들의 회고록은 어떤 의미의 회고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회고록이란 다산 정약용이 펴낸 자산 어보나 목민심서와 같이 국민 경제, 정서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지금의 정치지도자들이 남긴 회고록은 하나같이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는 이념의 재료가 되고 있다.
한국의 지도자들, 회고록이 아닌 참회록으로도 모자란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주고 비련으로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내각은 자중 자애하여할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시중의 소문은 송민순회고록을 보는 눈은 뱁새눈이다.
“반가문총장의 차기대권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강진에 있는 손학규와 친분이 두텁다” 모두가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둔 무성한 소문들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민을 위한 회고록이 아니다. 그들이 써야한다면 회고록이 아닌 참회록을 써야한다.
윤동주 시인은 창씨개명 닷새 전에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의 부끄러움, 반성과 성찰을 담아 참회록의 시를 남겼다.
윤동주 자신의 잘못에 의하여 나라를 잃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고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래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고 참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윤동주 시인과 같이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래도 부족 하거든 성경의 시편(51:1-18)에 나오는 다윗의 참회록을 보도록 권한다.
참회란 국민에게 보내는 회개를 말한다. 내가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참회의 눈물을 말한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너무나 당당하다.
전 국회의원 정청래씨의 출판기념회도 마찬가지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지도자들, 금도를 넘는 언행의 축사는 국민에게 심한 혐오감을 보태고 있다.
모두가 국민의 시선 보다는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진정한 회고록이라면 참된 사죄의 기쁨을 동반하는 것이다. 반성은 겸손이다. 반성의 윤리는 용서이며 화해다.
회고록이 국민에게 선물이 되는 방법은 내 속에 정한 마음을 담아서 국민에게 주는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시인과 소설가가 책을 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송민순씨의 회고록 파문은 순전히 지도자들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조지오웰은 자서전은 나의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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