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출신 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가 되었다. 공자선생은 어떻게 보시는지, 혹한의 더위에 직격 인터뷰를 어렵게 성사시켰다.
*‘공자선생님, 긴급인터뷰를 요청하는 데 시간이 되시는지요?’
이미 600전에 영면한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가! ‘공자 선생님, 답답하고 작금의 한국정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지혜가 필요하여 이렇게 무례합니다.’
난 중국 사람으로서 한국정부가 싸드 설치문제로 중국 정부와 매우 예민한 가운데 있는데, 한국의 내정에 조언을 인터뷰를 하는 것은 시기가 적절치 않다. 그렇지만 이미 인터뷰 일정이 비서에 의하여 잡혔으니 진행하여 보자.
*‘최근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의 당선을 어떻게 보는 지요’
이제 갓 당선된 대표를 향하여 논평을 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 단,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대표라는 것은 한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바라보는 것이다. 좀 더 넓게 보면 세계를 보는 눈, 역사와 미래를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정현 대표가 국민관이나 미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옳지 않다는 것인지요.’
난 없는 것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600년 전에도 ‘시경’을 논하거나 ‘논어’를 이야기 할 때도 2000년 전의 학자들의 논문에 근거하여 이야기 하였다. 이정현은 대표가 되자 일성이 대통령에 대한 주종의 관계에 중심을 두고 있다.
당의 목소리보다는 대통령의 남은 1년을 성공으로 이끌게 하여야 바른 대표관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한 시각은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사람은 중독이라는 것이 있다. 나아가서 습관이라는 것이 있다. 김유신장군은 자신이 자주 가든 기생집으로 애마가 머리를 돌리자 과거를 단절하겠다며 말의 목을 쳤다. 이것이 지도자의 새로운 결심의 리더쉽이다.
이정현대표는 상단부분 주군과의 종속이 습관이 되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과거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불러준 부분에 가슴에 심장처럼 간직하며 살고 있다. 물론 은혜를 저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시경에서 주장 한 것도 도덕, 윤리에 준하여 살라는 것이 오랜 주장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대표가 되었을 때는 국민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것이 멀리 바라보아 주종에게 충성 하는 길이다. 나는 늘 그런 이야기를 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한사람의 자식을 구하는 것과 수 천 명을 구하여야 할 상황에서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여야 옳은가? 나는 힘들지만 다중의 사람을 구해야 옳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탱하는 대의의 길이다. 이정현이 곡성에서 태어났고 호남을 터부시하는 새누리당에서 대표가 되었다고 흥분을 하고 있는 것에 나는 반신반의 한다.
이정현이 대의 정치를 한다면 이정현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정치는 한걸음 전진한다. 그러나 이정현의 주종의 정치를 한다면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대의 절대 군주 정치시대로 돌아가고 만다. 그것이 가장 무섭고 ‘큰일이다’고 내다본다.
최근 파격정치를 한다고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 회동에서 대변인을 대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기자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이정현대표는 그런 걸 두고 파격이라고 보는 같다. 기존의 대표와 다른 점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정현이 가지는 문제다. 늘 사병의 입장에서 정치를 하였다. 사병의 태도가 중독, 또는 습관이 배어있다. 한 국가나 조그마한 단체도 격식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의전이라고 한다. 의전을 형식이라고 보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정현 식으로 하면 먼저 대변인 제도를 없애야 옳다. 대변인을 두고 이용하지 않는 것은 당의 정강정책을 위반 한다.
정강정책의 기구표에는 당에는 대변인을 두고, 당의 입은 대변이라고 되어 있다. 기자들은 속 시원하게 대표가 발표하는 것에 다소 좋은 느낌으로 논평하지만 언론에서도 그러한 태도는 긴 안목에서 옳지 않다.
*‘그렇다면 이정현 대표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대표의 길을 가는 것인지요?’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인터뷰자의 양식과 지식을 의심하고 싶다. 이정현이 스스로 대의 정치가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 휘하에서 정치를 배웠다면 배운 데로 하는 것이다.
박근혜 당시 대표 때 이정현이 보좌 하지 않았느냐. 박대표는 세종시 옳기는 문제도 각을 세워 달리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였다. 그래서 박근혜대통령은 지도자 된 것이다.
지도자는 다중, 국민의 여론을 듣고 나가는 것이다. 국민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이해할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치고 리더쉽이다. 인천 상륙작전 영화를 보라. 트루먼 대통령이 인천 상륙작전을 반대하였으나 맥아더는 친구 대통령을 설득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하였지 않느냐. 정치는 설득의 예술이다. 그리고 소통의 예술이다. 내가 이정현대표에 대하여 ‘큰 일 이다’고 한 것은 바로 주군을 설득할 용기와 역사관이 있느냐다. 만약에 이정현이 주군을 설득하면서 국민의 의견에 귀를 기우리는 소통의 대표가 된다면 성공한 지도자로 급 부상 할 것이다. 김무성도 반기문도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잠바대기를 던지는 그 모습.
허공에는 옷걸이가 없다. 허공에 잠바대기를 거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벽에 잠바대기를 걸면 성공한다. 미래의 벽은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