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들인 전 의경들. 국민을 대신하여 여름의 찜통에서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에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한다
서울 광화문의 지난 한주간의 평균 날씨 33도. 폭염은 아스팔트를 녹일 듯 서있기도 힘들다.
23일 1만5천명의 민주 노총금속노조 총파업집회가 진행이다.
금속노조와 비슷한 경찰병력 1만 4천여 명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시위대 옆의 경찰은 겨울옷보다 두꺼운 무장차림이다.
저녁이 되자 소낙비가 내리면서 경찰에겐 우비가 보급된다.
가벼운 옷을 입어도 비 오듯 하는 날씨에 경찰의 차림을 보니 형언키 어려운 굴절된 한국의 현실을 목도한다.
광화문은 세월호 이후에 상시천막이 처져 있다.
지하도엔 장애인 연합회의 천막과 각종 현수막이 오가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
주말이면 각종 단체의 시위대는 뒤범벅이 되어 무슨 시위를 하는지 분별이 어렵다.
마이크 소리는 광화문 광장을 메운다.
외국인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긴장감도 조성된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역, 시청광장도 시시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에도 성주의 사드배치문제로 2천여 명의 시위가 있었다.
서울대병원 후문 쪽 대학로에는 지난해 시위로 혼수상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69)씨의 쾌유를 기원, 응원하는 농성 텐트가 상시화 되어 있다.
지방에도 이러한 시위의 단면은 계속되는 실정이다.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은 각자의 절박한 사정이 있다.
자신들의 주장을 이 사회가 귀 기울어 주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목소리를 높이고 떼를 쓰면 무언가 얻어 낼 수 있다는 경험 법칙을 믿고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부터라고 할 필요 없이 폭력이 난무하는 과격시위는 처음 주장하였던 진실성을 퇴색시키고 만다.
절실 하다는 호소는 온데간데없어진 셈이다.
이렇게 되면 절실한 설득력이 감소시키기 때문에 결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시위를 하는 측에서는 시위의 단면을 보는 경찰과 정부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시위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회를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시행하는 것 뿐 이라고 주장한다.
시위대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해서 경찰이 시위의 집회방법을 바꿀 경우, 공권력은 약화되어 시민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민의 권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위대의 입장은 과격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선진국에선 평화로운 집회는 최대한 보장 하지만,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는 규정을 위반하는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그렇게 때문에 미국의 경우는 대규모 시위에도 폭력은 볼 수 없는 시위행사로 막을 내린다.
주장만 남기고 시위대는 떠난다.
결과는 사회의 여론과 정부의 판단을 기다린다.
한국의 시위문화는 전혀 양상이 다르다. 현장에서 답변을 들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호소문도 예의를 넘는다.
이래서 우리사회는 폭력시위문화가 평화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된다.
이렇게 될 때 주장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이러한 시위문화를 주도 한다는 것은 오히려 불편한 관계가 된다.
시민단체가 나서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끈기를 가지고 나서라.
한국에서 있었던 월드컵경기의 대 규모 응원이 일사 분란하게 지루어진 경험이 있다.
당시의 시민정신은 세계를 감동 시켰다.
이러한 저력을 과시하여 시민단체의 자율정화로 시위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대안이다.
공권력의 주장 보다는 시민단체의 여론이 앞장선다면 시위문화는 새로운 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있다.
지금 시민들의 생각은 모두가 하나 같이 시위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칫 이념문제나 정부의 사주를 받은 시민 단체로 오해의 소지에 주저함을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의 상황을 지나서 우리 사회의 시위문화는 국가의 존립과도 연결되어 있다.
광화문의 시위는 관광객의 감소에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폭력은 더 큰 폭력이 키워 진다는 사회학적인 논리도 있다.
우리의 아들인 전 의경들. 국민을 대신하여 여름의 찜통에서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에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한다.
폭력적이고 막무가내 시위문화에 대한 반성과 함께 변화의 기회를 시민단체가 앞장 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