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회의장과 야당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다분히 정략적인 냄새가 난다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바른 제도 선택을 위한 기회라는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다.
남들은 그 사이 우리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는데, 어느덧 빈부 문제, 양극화, 저출산, 저성장 같은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선적했고 정치적으로는 권력 집중과 대의민주주의의 폐해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불안정성은 좋은 정치, 좋은 경제, 좋은 문화, 좋은 인권을 위한 인센티브가 취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우리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에 진입했다. 그 핵심에 장기 저성장이 있다. 장기 저성장 국면의 제도는 혁신할수록, 일할수록 이로워지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즉, 저성장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방식은 제도를 개혁해 해결하는 방식과, 제도는 그대로 둔 가운데 재정 지출과 통화팽창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후보자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일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개헌 논의는 국회의장뿐 아니다. 정치권 곳곳에 개헌론자들이 즐비하다. 개헌론자가 많은 것은 개헌해야 정치를 잘 할 수 있고, 정치를 잘해야 나라가 부강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헌안 제출권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전속 권한이다. 국민은 마지막 단계에 투표로 인준할 권한을 가질 뿐이다.
개헌, 필요한 시점에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진지한 논의 끝에 수순을 밟아 정석대로 진행해야 한다. 우선 ‘왜 헌법을 바꿔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헌법은 기본권과 권력구조 양대 축으로 구성된다. 둘은 동일한 차원이 아니다.
전자가 주, 후자가 종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본권이 목적이고 권력구조가 수단이다. 그러니 모든 개헌 논의의 시발점은 현재의 권력구조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는 인식의 공유다.
그렇다면 현재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로는 국민의 일상적 행복을 증진하기 어려운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한 논의와 설득력 있는 대안이 함께 논의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제각기 기대와 속셈이 다르다. 지향하는 방향도 각양각색이다. 의미 있는 개헌 작업을 위해서는 각계각층 국민의 개헌 열망을 응집해 내야만 한다.
언론도 시민사회도 학계도 함께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지역 격차, 빈부 격차, 세대 갈등, 비정규직, 사회 분열, 남북의 평화공존 등등 모든 문제를 어떻게 개헌을 통해 개선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염려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100년 앞 미래에 대한 설계가 필요한 때다.
그렇지만 87년 이후 어떤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제대로 이어가는 걸 본 적이 없다. 정권교체뿐만 아니다. 같은 당 사람끼리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햇볕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집권당을 해체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사람은 써도 이명박 정부 사람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공무원이 복지부동이다. 요직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면 납작 엎드려 다음 정부를 기다린다.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다음 정부에서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최대 변수는 역시 지역주의다. 김대중. 김종필(DJP)연합 정권이나 민주당의 데릴사위론을 이해하는 데 필수요소다. 노무현. 문재인. 안철수의 지지기반이 무언가.
지역정서를 부추기고, 그런 정서에 기대 손을 잡고, 정권을 만드는 그런 정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큰 지역별 유권자 수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희석된 소지역에서는 인물을 보고 뽑고, 그 대표들이 이념과 정책에 따라 제휴해 정권을 만드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정책의 일관성, 지역주의 완화만 이끌어낼 수 있어도 87년 체제를 손질할 가치로 충분하다. 문제는 국회 불신이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을 못 믿는데 권력을 더 알겨줄 수 있느냐다. 내각제나 이원집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다.
‘김영란법’을 만든다면서 국회의원만 빼버리는 의원들을 어떻게 믿겠는가. 이런 게 모두 다 개헌의 조건이다. 우리 헌법에는 실로 기이한 조항이 남아 있다.
개헌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날려 버려야 한다.
헌법 제 90조를 보면 국가 원로로 구성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고, ‘직전 대통령’이 자문회의의 의장이 된다고 규정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위인설관’이었는지 모른다.
진정한 민의를 품지 않은 헌법 조항을 찾아 바꿔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