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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마지막 피터 팬 조영남과 화투놀이
김 철 수. 아동문학가.美Solomon University 한국학장
작성 : 2016년 06월 06일(월) 17:47 가+가-
이 시대의 마지막 피터 팬 대중가수 조영남(71)이 대작 그림의혹으로 지난 3일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 속초에 사는 송모(61)씨는 그동안 작품에 따라 10여 만 원의 대가를 받고 조영남의 화투를 소재로 한 그림을 대작해왔는데 조영남씨는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고 1점에 수 백만 원 또는 수 천만 원의 고가에 판매해왔다고 주장 한 것이다. 송 씨는 지난 2010년부터 최근까지 200여 점을 조 씨에게 그려준 것으로 밝혔다. 영원한 자유인 조영남,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노래실력으로 감미로운 사랑의 그리움을 물어다 준 ‘제비’를 몰고 약관 30대에 우리들 앞에 나타나 그의 나이 71이 되기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살아왔다. 특히 최근에는 MBC문화방송 라디오의 대표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최유라 와 공동 진행자로 잘 나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역시 그는 조영남 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기어코 크게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언젠가는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을 통해 온 나라를 벌집 쑤셔 놓듯 하더니 이번에는 화투그림 대작파동이라는 난리판을 벌려놓은 것이다. 언젠가 그는 가요 ‘제비’를 부르기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비들이 작은 날개로 폭풍우를 뚫고 날아가다 낙오되면 무인도에 외롭게 떨어져 죽게 되는데 저도 갔다가 잘 돌아오는 도중에 지쳐서 떨어지는 제비가 됐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쎄시봉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한 다음에 이렇게 화투그림 대작사건과 관련해 말했다. “지금은 노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의사가 처방해 준 독한 수면제를 먹어 정신이 몽롱해요. 나오기 전에 윤형주가 손을 잡고 기도해줬습니다. 어른들이 화투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제가 너무 오래 화투가지고 놀다가 쫄딱 망했습니다.”그리고 마지막 곡 ‘모란동백’을 부를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는 제가 죽을 때 부르려고 만든 노래인데 이제 진짜로 부를 때가 된 것 같습니다.”화투(花鬪)!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모임장소에 가면 세 사람 이상 둘러앉아 있으면 그곳에는 보지 않아도 십중팔구 화투가 주인공이 되어 판을 벌인다. 초상집이든 잔치집이든 교외의 음식점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팔을 높이 들어 두들기고 패대는 것이 바로 화투이다. 이 화투는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실제 화투를 만든 일본인들은 5%미만이 이것을 즐길 뿐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마작(麻雀)이나 파친코(빠칭코)를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가히 ‘고스톱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보편화되고 대중화되었다. 일본에 맨 처음 화투가 들어온 경로는 16세기쯤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포르투칼인 선교사가 기독교를 전하면서 총 과 카스텔라와 함께 ‘가르타(Carta), 즉 카드게임이라는 것을 들여왔다고 전하고 있으나 실제 기록에 따르면 1573년에 이미 일본에서 가르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도요데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서민들의 카드놀이를 금지하자 이미 카드놀이 재미에 빠진 백성들은 카드놀이를 금지하는 대신 막부 몰래 풀과 꽃으로 디자인한 오늘날의 화투의 원조인 ’하나후다‘를 만들어 놀이를 즐겼다. 물론 지방마다 다자인이 각양각색이던 것이 ’하치하치하나‘라는 이름의 화투로 통일되기는 메이지(明治)시대라고 전한다. 700년간의 무신정치를 청산한 메이지정권은 화투금지를 풀어주는 대신 화투공장에 세금폭탄을 퍼부어 공장들이 하나 둘 스스로 문을 닫게 만들었고 그 겨를에 화투놀이가 점차 수그러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 부산과 시모노세키 (下關)항으로 오가는 뱃사람들로부터 유입되면서 화투라 불러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수투(數鬪)라 해서 숫자가 적힌 패를 뽑아 우열을 겨루는 놀이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화투가 유입되면서 이 전통놀이가 점차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 3일 춘천지검 속초지청에 출두한 조영남씨는 “정통 미술을 한 사람도 아닌 제가 어쩌다가 이런 물의를 빚게 돼 정말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며 “검찰조사를 성실하게 잘 받고 그때 와서 다시 얘기 하겠다”고 말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공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법과 질서와 도덕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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