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가 그의 탄생 452주년, 셰익스피어는 발광체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꿀단지인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대영제국이 큰소리 쳤을 만치 그의 영광은 사해(四海)를 떨쳤다.
그러나 그도 생존 시에는 성가(聲價)와 영예를 누리지 못한 비운의 작가였다.
삼류작가의 서열에 맴돌고 있던 그를 ‘베이컨’같은 이는 사정없이 혹평을 퍼부었다. 이를 테면 라틴어는 조금 아나 희랍어는 거의 모르는 시골뜨기라는 무시를 하였다.
그의 진가는 사후 200년 후에 괴테가 발견 하였다. 진정한 작가와 작품은 동시대에 평가와 영예를 관심하지 않는 데서 탄생 하는지 모르겠다.
시인 이상이 말했듯이 당대는 얼마든지 절망하는 법이라면 굳이 가변적인 당대의 붓이나 혀끝에서 불멸의 가치나 찬사를 거두어들이려고 조급해 할 일없다는 것이다.
사후 200년 만에 햇빛을 본 셰익스피어의 경우, 억울한 지하의 동면을 안타까워는 할망정, 그 불멸의 작가적 생명이 2백년 뒤 늦었다 해서 소멸되거나 녹이 슨 것은 아니었다.
생전의 셰익스피어는 주변의 시선이나 시류의 영합 되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보여 진다. 그가 걸었던 길은 자신만이 좋아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묵묵하게 상대의 눈치는 아량 곳 하지 않았다.
강단에서 바라본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 너무나 타인의 시선을 생각한다. 나 자신의 내면은 거부하는데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가는 안타까움을 지켜볼 때가 있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당시의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렸다면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쥴리엣’ ‘햄릿’ ‘리어왕’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대작들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치 않고 나만의 작품에 빠져들었든 셰익스피어.
그가 보여준 작품들은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로미오와 쥴리엣은 가로놓여 있는 사랑의 갈등을 아름다운 대사와 극적 구성을 통해 치밀하게 표현해 낸 희곡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 문호의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작가를 꿈꾸거나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의 일화를 종종 이야기 하여준다. 나의 작품이 당대에 평가를 받지 못해도 사후 200년 후에 셰익스피어가 빛을 발하듯 분명하게 사해에 진가를 떨치리라는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한다.
지난주 21일에는 제22회 전국 고등학교 백일장이 한국현대시인협회 주관으로 치러졌다. 나는 장원이나 차상을 받는 학생보다는 수상의 대열에 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의 교훈을 새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 계속 시작에 열중을 당부하였다.
심사란 매우 주관적이다. 시의 작품을 심사한다는 것은 심사원의 주관이지 객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의 위원이 심사하기 때문에 공정성은 담보가 된다. 그러나 절대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준 시제 중 ‘사람과 사람사이’가 서울 정신여고 박혜준양에게 장원으로 돌아갔다.
고교생의 시선이 진지하고 시원이 넓었다. 장원 시의 전문이다.
고인돌공원/우리는 고이돌과 함께 흙 위에 있다/누군가 딛어야만 하늘을 보는/청동기의 법칙/제 자식을 등에 짊어진/ 사람들의 얼굴/ 본적 있다 빛살무늬 얼굴/ 30년 동안이나/ 열 가구 먹여 살린/할아버지 등에 새겨진 지게자국/ 장례식까지 비는/모양을 만들며 퍼부었다/청동기 햇볕은/돌과 돌이 어느새 벌려낸/ 틈새 사이로 눌러 붙는다/ 지병을 견디어낸/ 그들은 다 빗살무늬/5000년이나 두 다리로/무거운 세상을 들어올린/사람들은 힘이 든다/크기에 맞는 바위의 삶은/ 지층이 되어버리고/고인돌, 이 유적지처럼/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지층으로 굳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