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비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얼 먹어도 쓴맛이 났다. 헌데 가비의 쓴맛은 달게 느껴지는구나” <고종>
5월은 신록이 분주하다. 덕수궁 돌담길을 무시하고 정관헌(靜觀軒)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관헌은 덕수궁 안에 있는 양관가운데 하나, 함령전 북쪽에 있으며 1900년 이전에 지어졌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1897년 환궁(아관파천 사건1896년2월 피신 후)하였던 것으로 보아 1900년 이전에 지어진 것은 확실하다. 기단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 바깥두리기둥은 처마를, 안두리기둥은 천장을 받치고 있다.
지붕은 안두리기둥이 받치는 부분이지만 팔자지붕을 씌웠다. 바깥두리기둥이 받치고 있는 부분은 지붕을 덧달아내어 퇴를 만들었다.
느낌은 로마네스크풍으로 만들었다. 베란다에 두른 나무기둥과 처마장식 및 동제 난간이 매우 정교하다. 전체적으로 전통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가 절충된 특이한 건물로서 근 대 서양식 건축의 도입을 보여 주는 건물이다.
이곳이 바로 오늘날, 커피의 대중화를 일으킨 효시, 마지 왕 고종이 가비를 마시던 곳이다.
고종은 러시아공간에서 1년여 피신기간 최초 커피를 접한다.
가비는 커피의 영어발음을 따서 부른 고어(古語)다.
고종이 서양의 사신들이 왔을 때 접견 장으로 이용되었나는 팻말은 그날을 증언한다.
라일락 피는 5월이면, 커피를 들고 정관헌 모퉁이로 달려간다. 한 잔의 커피는 나만의 최고의 낭만과 사치다.
고종이 누린 호사와 비애를 겹쳐서 회상하는 시간일까.
고종의 커피시중을 든 사람은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 이었다. 1902년 고종의 후원으로 손탁 호텔에 커피점이 문을 여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점이다.
손탁 호텔이후 일본인이 청목당(靑木堂)이라는 살롱을 열었고, 1914년에는 조선호텔이 생겨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인이 최초로 개업한 커피하우스는 1927년 우리나라 최초감독이었던 이경손이 종로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라고 한다. 한국인은 커피하우스를 ‘다방(茶房)’이라고 불렀다. 다방의 어원은 고려시대 궁중의 연회나 사신들을 접대하기 위하여 다방이라는 관청을 둔 것에 비롯되었다.
1928년에는 종로2가에 영화배우 복혜숙의 ‘비너스’라는 다방이, 1929년에는 YMCA근처에 ‘멕시코’라는 다방이 열었으며, 극작가 유치진이 ‘브라다나스’을 열었다. 1932년에는 조선호텔 건너편에 동경미술 학교를 졸업한 조각가 이순석이 ‘낙랑팔러’라는 다방을 개점한다. 1933년 천재시인 이상도 ‘제비’라는 다방을 열었다. 이상은 이후 ‘스루’ ‘무기’ ‘69‘등의 4개의 다방을 개업 운영하였다. 이상의 대표작인 ’날개’는 제비다방에서 창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940년대에 다방은 그야말로 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플라워’다방이다. 청록파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시인이<청록집>출판기념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서정주시인은 ‘플라워다방’이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1950년대는 청동다방이 생기는데 문인들의 산실이 되고 ‘청동문학‘이라는 문집이 나온다. 시인 공초 오상순이 이곳 단골이었다.
1957년 박경원의 ‘남성너버원’이라는 노래 가사 중 ‘다방에 가고 영화를 보고 사교춤을 추워야만 여자 인가요’가사를 보아도 다방은 모던 풍의 공간이다. 1960년대는 다방의 상업화 시대가 된다. 이때 다방에는 마담이 등장한다. 대형화되고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다.
1970년대는 다방노래의 절정을 보인다. 신중현 작사 작곡 김추자의 ‘커피한잔‘ 노래는 그야말로 한국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가요는 2000년대로 넘어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이쳐진 다방풍경을 절절히 묘사한다.
당시의 다방은 예술계의 소통의 장소였고 시와 소설 등 작가협회 사무실 역할도 하였다. 커피는 차츰 가정으로 유입되어 1930년 11월 9일자 ‘매일신보’에는 ‘맛나는 커피를 잡수시려면’이라는 기사 실릴 정도 였다. 1970년대의 명동의 쉘부르는 음악다방의 대표적 대명사가 된다. 1980년대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유행했고 이후 커피 마니아가 직접 생두를 구입해와 로스팅을 하고 커피를 만드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황금비율의 커피믹스는 영민한 한국인의 독특한 계발 품으로 프랑스의 일류 바리스타가 즐긴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1896년 고종.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을 들였다!’ 는 말을 남겼다. 혹 오늘의 커피 대중화를 예견하였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