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하서 김인후선생(1510~1560)을 기리는 춘향제가 26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사적 제 242호)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정환담 필암서원 산앙회장, 정운염 오인균 필암서원 도장의, 송하경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형관 광주향교 모성회장, 윤용훈 대전 유림원로, 유두석 장성군수, 김인수 울산 김씨 문중 도유사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춘향제는 제물을 바치는 봉진례, 비단을 바치는 전폐례, 술잔을 바치는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초헌관을 맡은 송하경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서원 내 청절당에서 ‘하서 선생 천명도 제사에 대한 재해석’을 주제로 강론했다.
송 명예교수는 “하서 선생은 성리학 최대 화두인 이와 기에 관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으며 태극에 대한 이론에도 식견이 높아 천명도를 완성했다”며 “제사는 천명도를 간단하게 해석한 7행이 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타고난 본성을 원만하게 실현하는 성자라야 눈에 보이는 만물 창조의 이법인 천명을 통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 윤리강상이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에서 시어머니를 쥐어박고, 시아비를 굶겨 내쫓는 며느리가 있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또 자식이 어미를 토막내어 살해하고 버리는 현실을 보고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고 글로도 쓰기 부끄러운 너무나도 끔찍스러운 현실에 차라리 입을 다물고 붓을 꺾어야 될지 모르겠다.
인심이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다. 우리는 자고로 선한 민족인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지금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도덕을 앙양시키고, 미풍양속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장성 유림들의 당면 과제가 아닌가 싶다. 필암서원의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하서 김인후 선생이 인종의 세자시절 스승으로서 교육했던 왕실교육을 재연한 왕실교육 체험, 하서 선생 애니메이션 관란, 하서 선생 발자취를 찾아 답사등이다. 이야말로 장성 유림과 장성군수의 선견지명이라고 본다. 선비의 고장 장성군이 필암서원을 호남 정신 문화의 메카로 만들어 놓고 도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주인공 하서 선생은 어떤 분인가? 퇴계 이황과 학문으로 쌍벽을 이뤘던 분이다. 선생은 문묘에 모셔진 정몽주 등 ‘동국 18현’ 가운데 유일한 호남 인물이다.
하서 선생의 삶은 호남 절의의 근간을 이뤘다. 선생은 제자로 가르쳤던 인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관직에서 물러난 후 15년 동안 다른 임금을 섬기지 않고 초야에서 학문을 닦았다. 하서 선생은 호남의 유학자들에게 학문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명앙정 송순의 문인이고, 송강 정철의 스승이기도 하다. 또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나 미암 유희춘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는 사돈지간으로 학문과 교분을 나눴다. 특히 하서 선생은 퇴계 이황과 8년 동안 ‘사칠논변’을 펼침으로써 조선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고봉 기대승의 학문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계산 풍류를 노래한 1천 500여수의 작품을 남김 위대한 시인이었다. 그럼 하서 선생이 5세 때 지은 한 시 한 수를 다음에 들어보기로 한다. 그것은 시만 보아도 인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땅 형세를 따라서 높고 낮으며 천시로 말미암아 이르고 늦네 사람 말을 어찌 탓할 게 있소
달은 본래 사정이 없는 거라네‘. 이시는 새해를 맞아 둥근 보름달을 보고 쓴 것이다. 아주 유명하다. 과연 다섯 살 나이에 이렇게 깊은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를 꿰뚫어 본 이 시를 보고 당시 사람들은 천재의 작품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깨끗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자연과 세상을 한점 사심없이 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하서 선생은 훗날 대학자로 대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 시조 한수를 다음에 들어보겠다. ‘자연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시조는 현재 전남 장성군 장성읍 기산리에 있는 장성 아카데미 하우스 앞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도 절로하니 산수 간 나도 절로 아마도 절로 삼긴 몸이라 절로절로 늙사오리’. 이 자연가는 지금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겨 암송하고 있다. 이 자연가는 시경 ‘위풍’에서 비롯됐다. 자연 도락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서 선생의 시세계는 시어를 통해 도학사상을 구현했다. 따라서 우리는 하서 선생이 도학적 자아와 예술적 자아가 하나의 합일된 그의 인격주체의 고향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시언지’가 그것이다. 그러면 하서 선생의 사상은 무엇인가? 인간수행론을 담고 있는 도학적 경세사상이다. 도학적 경세사상은 인류애와 생명애를 강조한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실천적 인각학이다. 하지만 장성군수는 장성선비대학에 ‘하서 선생 도학적 경세사상 철학반’을 개설해야 한다. 작금에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성군 당국은 하서 선생의 ‘도학적 경세사상’연구에 심형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