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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비율
최 창 일 예능시인·한국문인협회 대변인
작성 : 2016년 03월 29일(화) 18:54 가+가-
평일의 교회는 어둠이 지키고 있다
나팔꽃은 어둠이 피운다
주일이면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가득 메운다.
교회를 오고 가는 주변거리에는 다문화에서 온 성도들이 각기 나라의 고유 식품을 가지고 팔고 있다. 주일날은 그야말로 교회의 주변은 가쁘게 숨 쉬며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평일의 교회를 지나가면 정적이 감돈다. 목사님의 발길마저 뜸하다. 어느 날은 평일 교회 안을 살며시 걸어본다. 교회는 다른 건물과 다르다. 유리창이 좁고 특수 칼라로 되었다. 조명이 어둡다. 어두운 교회을 나서려니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
아, 그러구나 평일의 교회는 어둠이 살고 있었구나.
우리는 늘 어둠에 대하여 무감각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싶다. 밝은 날만 생산적이고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였던 것이 아닌가.
나팔꽃은 이른 아침에 햇살을 받고 핀다.
나팔꽃을 피우는 것은 햇빛이라는 생각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한 학자가 있다.
한밤중에 아침 햇살 같은 인공 먼동을 꽃잎을 접고 있는 나팔꽃에 비추었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곧 나팔꽃을 피우게 한 것은 햇빛이 아니라 어둠인 것을 알아낸 것이다.
어느 만큼 어둠을 쪼여야 만이 나팔꽃은 피게 된다.
식물과 동물의 관계도 재미있는 관계를 형성한다. 식물은 자신이 자라 잡은 곳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먹고 산다. 그렇다고 세상 소식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남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에 의하여 그곳의 저간 소식도 듣는다. 나비에 의하여 교접도 한다. 자신의 성욕을 다른 꽃에게 여과 없이 보내기도 한다. 그 몫은 벌과 나비가 전한다. 그래서 종족을 번성하게 한다. 어느 날은 다른 동물들이 식물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우기도 한다. 하루면 몇톤을 먹는다는 코끼리를 만나면 토벌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식물은 원망이 없다. 숙명으로 받아드린다. 동물에 의하여 자신들의 과대한 성욕에 거세를 당하는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마치 욕망의 마차처럼 달리며 초식을 하지만 그들에게도 아픔은 있다. 견고한 체질을 가졌으나 퇴행이라는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언젠가는 눈을 감는 운명의 시간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존재만 한다면 지구는 진즉 멸망하였을 것이다. 어느 학자는 말한다. 사람은 각기 개성에 의하여 다르다. 키가 작거나 크다. 얼굴이 희거나 검거나 하다. 예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미운 사람도 있다. 조금 밉다고 예쁜 사람에 의하여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각기 달란트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서울 대학만 모두 들어간다면 세상은 다양한 기업의 형태가 사라질 것이다.
일류대학은 일류대학의 기능을 발휘하면 된다. 이류대학이나 삼류대학도 각기 가진 사회적 기능을 발휘한다. 이것은 다양성의 사회에 자연스러운 형태다.
대기업만 있으면 사회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이러한 현상을 잘 받아 드린 자를 우리는 적응 능력이 뛰어 난자라고 한다. 간혹 자신을 폄하하고 일류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원망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본다. 우울증에 걸리거나 사회의 부적격자로 퇴행의 길로 가고 만다.
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비행기를 비롯하여 자전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 졌다. 제각각 환경에 맞는 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자전거의 거리를 비행기를 타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우리는 무어라 할 것인가.
자연,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은 다양한 문화와 같다. 여러 가지의 문화는 인류의 발전을 거듭한다. 꽃꽂이도 그렇다. 같은 꽃꽂이를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될 수가 없다. 플라워아티스트의 다양성에 의하여 사람들은 눈의 성찬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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