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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40개 그림자
최 창 일 예능시인·한국문인협회 대변인
작성 : 2016년 03월 08일(화) 17:54 가+가-
폭력은 어디서 왔을까
빛과 어둠처럼 폭력에도 그림자가 있다. 모든 사물의 그림자는 하나만 존재한다. 그러나 폭력의 그림자는 40개가 넘는다. 하나의 폭력, 수많은 그림자를 만든다. 인류 최초 폭력의 그림자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다. 에덴에서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낙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신은 아담을 쫓으면서 그의 손에 대추야자(과일), 밀(식량), 미르투스(방부제, 향기)3가지 식물만을 쥐어준다.
아담은 손에 쥘 수 있는 정도의 약소한 세 가지 식품의 양에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낙원에서는 자유롭게 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었으나 낙원을 벗어난 동시에 노동을 해야만 먹게 된다. 노동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아담의 경우는 갑작스런 신분의 변화에 매우 큰 낙담과 분노가 자랐을 것이다.
아들, 카인과 아벨의 태교 중. 아마도 에덴에 쫓겨난 분노가 가득 찬 태교이었을 것이다. 결국 태교의 잘못된 그림자 결과인가. 카인은 동생을 돌로 처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생긴다.
인류의 폭력은 이렇게 탄생되며, 그림자는 속수무책 커가게 된다.
인류의 가장 큰 폭력
인류의 가장 큰 폭력은 세계 1차 대전이다. 수많은 사람이 전쟁이라는 폭력에 의하여 죽어간다. 이후 국가 간에는 폭력을 이기기 위하여 신 무기계발 경쟁에 나선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 러시아(구 쏘련), 일본, 중국이다. 물론 중동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들은 세계를 하루아침에 멸망시킬 가공할 무기 경쟁에 나선다.
그 후 무기를 실험하듯 2차 대전이 일어난다. 이렇게 아담의 그림자는 수 만개의 폭력이 되어 인류를 지배하게 된다.
한 때 서양의 영화들은 ‘석양의 무법자’와 제임스 본드의 ‘007’영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석양의 무법자’는 정당방위라는 방법으로 보인관이 총을 멋지게 뽑아 무법자를 쏜다. 학생들은 단체 관람을 통하여 무법자가 쓰러지는 장면에 정의가 이겼다고 박수를 보낸다. ‘007’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세계의 젊은이는 폭력적인 영화. 박수를 보내면서 폭력을 가슴에 콩나물 키우듯 한다.
이후 홍콩, 한국, 일본은 각각 그 나라의 상징을 내세워 폭력적인 영화를 만든다. 일본은 사무라이, 검을 이용. 홍콩은 소림사 무예, 한국은 종로의 깡패, 김두환 영화를 시작으로 조직 폭력이 난무하는 잔인을 만든다. 이후 천만관객의 시발점, ‘친구’는 정점을 보인다. 한국의 젊은이 가슴에 폭력이 점령한다.
영화예술은 대중적인 의사소통이다. 오직 폭력의 유희로만 전략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하여 영화산업은 아량 곳. 예술의 자유를 놀음하듯, 마음껏 누린다. 그렇게 폭력 문화는 화려한 그림자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폭력예술의 결과는 세계 자살 율 1위라는 부끄러운 그림자를 만든다.
자살의 도구는 태반이 약물이다. 역사적으로 사극에선 왕의 어명이라고 사약을 내린다. 장희빈이 사약을 받는 방면에 온 국민들은 카타르시스를 씻는다. 그러나 무서운 극단이 마음에서 자리 잡는다.
2015년, 미국의 1년 총기 살인은 1만 3천명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보안관이 멋지게 총을 쏜 장면이 결과물이다.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모든 종교의 수도방법은 자신을 찾아가는 수행이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은 1차 대전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을 찾아가는 문학이다. ‘안네의 일기’도 그렇다.
‘명작을 읽는 습관은 닥쳐올 인생의 여러 가지 불행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하나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고 ‘서머싯 몸’은 주장한다.
부모는 자식과의 다양한 대화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대화는 고루한 방법이다.
거리로 나서라. 여행을 통하라. 저명인사의 강연을 경청하라. 그들의 저서를 탐독하라. 대화는 반성이다. 폭력은 반성이 없다. 눈물도 없다.
폭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슴에 그림자로 앉는다. 희망엔 단서가 있다. 생명의 존중이 희망이고 자유는 아름다운 약속이다. 폭력은 희망도, 자유도 없다.
나에게 착하게 하는 것이 폭력을 이기는 방법이다. 상처와 어둠은 누구나 있다. 상처는 치유하는 것이다. 어둠은 아침이 몰아낼 것이다.
폭력은 나쁜 기억의 그림자다.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좋은 생각이 누른다. 극단이 폭력이다. 극단은 늘 찰나의 시간이다. 구름이 지나듯 극단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은 폭력을 지우는 것이다.
다음 폭력은 ‘알파고’라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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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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