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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탐욕의 뿌리
최 수 호 현대행동심리연구소 소장
작성 : 2016년 03월 02일(수) 18:22 가+가-
우리는 불공평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인정되거나 불공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시기할 수 있다.
그러면 시기하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시기심을 자극하여 불공평에 대한 시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시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름대로 상대가 주장하는 불평들의 부당함에 대한 소견을 제기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발생한 분쟁을 조정할 때 이상으로 삼는 것이 소위 ‘정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란 사회를 지탱하기위해 정해놓은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규범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온전히 자기편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정의는 현행법이나 규범이 얼마나 공정한가를 가늠해볼 수는 있지만 실제로 정의를 온전히 구현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법적인 권리는 요구할 수는 있지만 정의를 완전히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정의로운 사회란 늘 현실이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이 되기 쉽다. 그러나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의 시기심은 비이성적인 것만은 아니므로 정의를 쫓는 자들의 시기심을 만족시켜주면 불공평으로 소외된 자들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이 좀 더 나아졌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불의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기존의 정의가 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할 것이다.
이처럼 갈망하는 정의가 공정한지 부당한지를 확정하는 것은 항상 시기하는 사람과 시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내리는 판단이며, 이들이 판단한 부당함은 각자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논쟁을 벌인 결과이므로 물론 객관적 사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려지는 정의의 판단에 논쟁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모여 사는 사회공동체를 원만히 영위하기위해 구성원 모두에게 무엇을 기대해도 될지를 알 수 있도록 규범을 무수히 만들어 왔고, 동일한 규칙을 모두가 인정하고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공동체는 우선적으로 규범을 따르도록 정의되어진다.
그리고 공동생활을 순조롭게 이행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규범 속에는 ‘누구에게나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성취할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각자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성과는 인정해야한다.’ ‘우리는 더 능력이 있거나 다른 사람과 동일한 능력일지라도 원하는 성취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다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등등의 ‘정의’를 앞세운 규범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규칙을 보존하고 따르도록 지켜보는 생활에 익숙해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사회에는 능력과 노력을 감안한 암묵적 정의가 작동하고 있으므로 노력과 능력에 따른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불평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설령 불공평한 성취나 분배가 이루어진다 해도 수긍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존중의 대상으로 추앙을 받게 된다.
심지어 완벽한 정의가 지배하는 유일한 곳인 천국에서도 개인의 성과나 덕행을 철저히 따져서 부당하게 후광을 수여하지 않도록 한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일말의 의심이나 불신이 생기지 않을 만큼 공정한 판단이 이루어져서 완벽한 정의가 실현되면 적대적 시기심이 생길리가 없고 오히려 낮은 자는 높은 자를 경탄하고, 앞선 자가 더 많은 축복의 후광을 향유하는 것에 대해 다 같이 기뻐한다.
그러함에도 모든 인간은 탐욕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개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른 성과를, 집단은 구성원들의 평등을 보장받으려는 정의를 적용하려는 경향을 선호한다.
따라서 적용된 정의의 적합성은 언제라도 따져 물을 수 있으며, 공동체에서 공유하고 있는 다양한 정의규범들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는 가의 여부는 특정상황에 활용되는 결과를 살펴보아야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의견일치를 볼 필요도 없으며 예견된 정의규범만 적용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인간관계를 강화하고 단결을 촉진하려면 우선적으로 다른 모든 구성원과 같은 생각을 하고 동일한 느낌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불이익을 피하려는 탐심 때문에 각 구성원들은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취하려고 한다.
특히 같은 집단이나 그룹이 아니면 극단적으로 양분하는 특징을 공유하면서 경쟁적 투쟁으로 삶을 몰고 가는 성향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니 모든 인간이 지닌 탐욕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기 전에는 아무리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려해도 이상적 환상일 뿐 현실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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