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은 상식적용을 잊고 있어서가 아니다.
상식의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상식이 감당해 낼 수 없는 믿음이 생성되었는데도 상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을 때 길을 건너서는 안 된다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상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믿고 아무리 기다려도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길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빨간 신호에 대한 상식을 감당해 낼 수 없는 ‘고장’이라는 새로운 믿음이 생성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앞장서 길을 건너면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길을 건널 것이다.
그런데도 상식에 의존하여 길을 건너지 않고 일상생활에 불편을 감수하고 있을 것인가? 최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세상을 흥분케 한 ‘목사의 자녀살인과 시체 유괴’ ‘친모의 자식살해 암매장’ 사건들을 보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목사이며 신학대학 교수로서 제자들로부터 호감을 받았다는 지식인이고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서 어린 자기 자식을 혹사함으로써 생명을 끊어지게 하고 어떻게 자신의 가족들이 매일 같이 사용하는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둘 수 있었을까? 그것도 몇 년간을?! 그리고 어떤 상식의 작동이 교회와 대학에서 목회와 강의를 할 수 있게 했을까?
아마 정상적인 의식을 적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악마를 묘사하기위해서도 이처럼 잔혹한 장면을 그려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한 현실이다.
자식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어머니에 대한 보도를 보면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고 명랑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직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들 주변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이들이 자식들에게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것도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데 이런 엄청난 죄악을 은폐하고 주위에 환심을 살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상식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모성애’라는 상식은 허구인가? 우리가 목사나 교수라며 우러러보는 ‘품위’와 ‘인격’이라는 상식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상식이라 말하는 ‘모성애’ ‘교수의 품위’ ‘목사의 인격’이라는 상식은 이들에게는 사전적 용어에 불과한 단순한 지식이었단 말인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자들이라면 이런 상식적 추론도 가능하련만 고등교육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니 그 마저도 용납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사회가 제시하는 상식과는 거리가 먼 자신만의 상식이 스스로를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위 사회가 말하는 정신병자로 일러주는 상식이 적용된 상식 말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을 했다고 인정해버리는 상식적 추론으로 이해를 구하는 상식을 동원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상식에 상식을 더해가면서 상식의 모순이나 잘못을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상식을 생성하는 지혜를 발휘하면서 이해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식을 적용하기를 잊고 있어서가 아니라 지켜내야 할 상식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상식을 파기하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늘 살펴보는 슬기로운 삶을 살 줄 알아야 한다.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어 품위 있는 삶을 누리고자 지도교수의 갖은 모멸을 참아야 했던 대학원생 학대사건을 살펴보자.
요즘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의 사생활의 부속품처럼 지도교수의 가정사 정도 돌보는 고통은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란다.
그런데 어려운 형편에 공부하고 있는 제자를 우려서 부모로부터 돈을 착취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인분까지 먹여가면서 돌려줄 돈을 포기하도록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했던 일이 있었다.
배우는 학생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모욕을 감내해야한다는 상식에 따라 모멸감을 감수했다 해도 금전을 사취하려고 교수직을 이용한 상식은 무엇이며 인간에게 똥을 먹여서 치욕감을 줌으로써 사취한 돈을 포기케 하려는 상식적 추론은 어떤 상식에서 비롯된 상식이었을까?
학생에게는 상식을 지켜도 예기치 못한 상황을 감수해만 하는 결과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식이 작동했다는 상식을 적용해야 겨우 자위할 수 있는 상식적 이해가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만약 상식이 복잡한 사회 현상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별로 쓸모가 없다면 상식의 단점이 분명히 보여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상식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뚜렷이 잘못된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