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길을 읽었습니다.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양식도 떨어지고 물도 떨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사막을 걷는데 젊은 아들은 지쳐 있고 나이 많은 아버지는 꿋꿋이 걷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소망이 있는데 아들에게는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살 때 외형은 똑같아도 옵션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꽤 큽니다. 옵션이 거의 없는 차는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새로운 옵션들이 자꾸 추가됩니다. 차에 더 좋은 브레이크를 달고 히터나 에어컨도 좋은 것을 달고 여러 가지 첨단 기능들을 장착하다 보면 달리는 데에만 충실한 자동차와는 가격 차이가 납니다.
옵션이 많이 장착된 차를 타면 아주 편리하고 좋습니다. 같은 차종이라도 어떤 엔진을 다느냐에 따라 힘이 달라지고 어떤 브레이크를 다느냐에 따라 제동력이 달라집니다.
좋은 차일수록 여러 가지 옵션을 덧붙여 눈길에도 미끄러지지 않고 빗길에도 안전합니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표시가 잘 나지 않지만 실제로 자동차를 운전해 보면 그 차이가 현격히 느껴집니다. 사람도 마음에 옵션이 있습니다. 사람 마음은 늘 변하기 때문에 일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마음에 사랑이 있는 사람은 사랑이 그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도 그렇고 기쁨이 있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반대로 미움이 가득한 사람이나 불평이 가득한 사람은 그것들이 삶에 영향을 줍니다. 겉모습은 똑같은 사람이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고 둘 다 지쳤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마음에 절망이 가득한 아들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기쁜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당연히 아들은 부정적인 말만 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는 죽게 될 거예요. 아버지 나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요. 어차피 죽을 건데 더 걸으면 뭐해요? 왜 그렇게 말합니까? 그 안에 절망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아 우리는 안 죽어 우리가 왜 죽어? 아버지 물도 떨어 졌는데 어떻게 안 죽어요? 결국 죽지요. 아니야. 나는 이 사막을 많이 다녀서 여기에 대해 잘 알아. 그런데 길을 잃었잖아요? 사막은 말이야, 모래바람이 불어서 늘 길이 바뀌어. 나도 여러 번 길을 잃었어. 그때마다 어떻게 했는지 알아? 동쪽을 향해 걸었어.
오늘 해가 뜨는 것을 보았지? 우린 지금 정확히 동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거야.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사막 끝이 나올 거야, 아버지 거짓말하는 하는 거죠? 날 속이는 거죠? 날 속이는 거죠? 사막 끝이 어디 있어요? 어제도 하루 종일 걸었는데 끝은 나오지 않았잖아요. 네 말대로 우린 아직 사막 끝에 도달하지 않았어. 하지만 사막 끝에 굉장히 가까이 와 있어 오늘이나 늦으면 내일쯤 도달할 거야. 그러니까 힘을 내서 걷자.
아버지는 아들의 지친 마음을 일으켜서 다시 걷게 했습니다. 동서남북 모래뿐인 사막을 한참 걷고 있는데 아들이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저기를 봐요. 아들이 가리킨 곳에 무덤이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무덤 가까이 갔습니다.
아들은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버지 우린 끝이에요. 이 무덤을 보세요. 이 사람도 틀림없이 우리처럼 길을 잃고 헤매다가 목이 말라서 죽었을 거예요. 우리도 죽게 되겠죠?
그러면 우리가 죽은 사실을 어머니에게 어떻게 알리죠? 우리가 죽으면 동생들은 어떻게 살죠? 아버지”아들이 맥없이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우린 살았어. “살았다고요? 이 사막 한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요?”네 말대로 이 무덤 안에 있는 사람이 길을 잃고 목이 말라서 죽었다고 하자. 자기가 무덤을 파고 들어가서 죽었겠어? 그건 아니잖아.
죽은 이 사람을 묻어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그 사람들의 시체는 보이지 않잖아. 그들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지. 생각해 봐. 무덤은 항상 사람들이 사는 마을 가까운 곳에 있어.
무덤이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에 있다는 증거야. 똑같은 무덤을 보고 아들의 생각과 아버지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똑같은 일 앞에서 마음 안에 절망이 가득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론과 소망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론은 정말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환경이 열약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쁨이나 행복도 환경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소망과 사랑이 만들어냅니다.
아들의 마음에는 절망이 가득하니까 고통과 괴로움뿐이고, 소망을 가진 아버지에게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마음 안에 있는 기쁨을 아들에게 전해주려고 애를 썼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절망스러운 것은 당연해’ 하고 생각하니까 아버지의 소망이 흘러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만일 아들이 처음부터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였다면 아버지가 기뻐할 때 아들도 기뻐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 텐데, 아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있는 소망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버지와 똑같이 길을 가면서도 고통과 괴로움에 이끌려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해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가 갖지 못한 기쁨, 행복,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없는 것들을 마음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높이를 낮추어야 합니다.
내가 진짜 부족한 부분이 많다, 심약하다, 어리석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맞을 때는 물론이고 맞지 않을 때에도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