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재창당 수준으로 당을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국보위에 참여한 김종인에게 선대위원장을 맡기고 선대위가 안정 되는대로 사퇴하겠다고 했다. 회견의 핵심 용어는 ‘변화와 사퇴’였다. 문 대표가 당을 변화시키겠다면서 당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말은 모순적이다. 당을 변화시키려면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당 대표를 내려놓으면서 어떻게 변화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친노나 친문 인사라고 볼 수 없는 일부 당 소속 의원도 문대표의 사퇴로 당이 더 무질서해지고 더 큰 혼란으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표는 이른바 친노 패권주의 세력의 중심에 있었다. 친노 패권세력은 정치를 끝없이 선과 악,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진영논리를 바탕으로 국가적 정의보다 분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국민에게 투영돼 왔다. 이들이 제 1야당의 주류로 등장한 지난 5년간의 적폐가 결국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야권 분열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문 대표가 자신의 임기 마지막 작업으로 친노 패권 문화를 수술하겠다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영입한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변화의 돌파구가 가능하다는 인식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표의 회견은 일단 더불어민주당을 살리겠다는 자세를 보여줬다고 평받을 만하다. 하지만 문 대표는 종종 언행의 불일치와 메시지의 혼선을 일으키곤 했다. 문 대표는 당권에서 깨끗하게 손을 떼고 새로운 지도부에 간섭하지 않는 인내를 끝까지 발휘해야 한다.
문 대표 주변의 친노 패권 세력들로 지목된 이들도 행여 새 지도부를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 대표는 공천과 선거 운용에서 친노 세력을 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문 대표는 선대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은 지난 14일 4.19 묘지를 참배하는 자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지칭했다. 이에 대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전 대통령이(...) 본인 스스로 망가뜨렸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국부라는 호칭을 붙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한 위원장은 다시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한 분”이라고 김 위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논란을 지켜보면서 두 당이 과연 야당이 맞나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이승만 국부론’과 국보위 출신 선대위원장 임명 두 가지 모두 동의할 수 없다. 국보위는 전두환 신군부가 내각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초헌법적 기구로 정치 활동 규제, 언론계와 공직자 숙청, 상청 교육대 발족 등을 인가한 공포 정치의 도구였다. 여기에 있던 사람을 더불어 민주당이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해하지 어렵다. 한 위원장은 자신의 ‘이승만 국부론에 대해 논란이 일자 “국부에 준하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를 한 사람이다. 건국 대통령의 공이 과보다 많다. 그 분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은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총선이 가까운 지금에 야당끼리 그걸 가지고 싸울 때가 아니다. 오늘의 우리 눈에 비치는 정치의 모습이 그리 좋지 않다. 승리만 하면 세상 모든 것 다 줄 것처럼 빌 공(空)자 공약을 하고, 내가 하면 선이고 네가 하면 악’ 똑같은 짓을하며 서로를 헐뜯는다. 그러느라 법안은 쌓이고 국정은 멍이 든다. 서로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정직한 면이 없다.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다 보니 그 주체인 정치인의 모습도 부정적으로 비친다. 상식도 예의도 없는 사람,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로 보인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대부분 인정이 많고 상냥하다. 거의 다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이 멀쩡한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게 하는 것일까? 정치인 개개인의 의지가 좋은 방향으로 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특유의 지역 구도, 기득권에 안주한 양당 구조, 잘못된 문화, 그리고 수명을 다한 의회주의 및 국회에 모든 결정권이 집중돼 있는 시대 착오적 국가 운영체계 등이 다 그런 것이다.
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은 천박하기만 하다. 기껏 생각한다는 개혁이 모바일 투표에 오픈프라이머리 등이다. 주로 당내 경쟁을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그나마 정치 내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인재 영입’을 하고 있다. 병든 땅에 새로운 씨앗과 묘목을 심겠다는 말이다. 청년 사업가, 교수, 의사, 그리고 잘 알려진 원로까지 줄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들이 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꿀 것이다.” 속임수다. 병든 땅은 넓고, 이들의 힘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야권은 국민을 위해 ‘선진화법’ 개정에 동의해야 한다. 선진화법은 악법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법이어야 한다. 정치도 국민을 위한 정치여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를 바꾸기 위해 정치인들의 생얼굴을 정확히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를 구할 사람은 오로지 국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