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광고 카피를 들을 때 마다 ‘가장 한국적인’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의 토착예술이 흐르는 선(線)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건축백과 사전에 한국의 선의 건축이 자랑스럽게 올라 있어서가 아니다. 한국문화에 있어서 선의 문화를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국어사전에는 하나의 단어를 두고 가장 많은 의미를 가진 단어는 선이 아닐까 한다.
선할 선(善), 수행의 선(禪), 길 위의 선(線), 먼저 선(先)등등 더 많은 뜻이 담긴다.
한국을 선의 나라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지도를 펴 봐도 한국처럼 선으로 만들어진 나라도 드물다.
외국인들이 한옥마을에서 환호를 지르는 것의 으뜸이 기와지붕의 매혹적인 선이다.
딱딱한 건축자재로 만든 선이 밀가루 반죽을 대하듯 하다.
꽃꽂이, 마이스터들은 선을 주무르고 호흡하며 웃는다.
하나의 작품이 얼마나 선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는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기준이 된다.
한국을 상징하는 토착문화는 선으로 표현된다. 곡선의 한복의 치마와 저고리버선의 허리를 보고 있으면 자연의 곡선과 너무나 어울린다. 한복은 자연을 한 번도 떠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을 옮겨놓은 예술의 극치다.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 간 한복이 패션 장에서 호흡을 멈추게 한 일들은 과장이 아니다. 한복의 대병사가 대어버린 이영희 한복쟁이가 바람 부는 독도에 패션쇼는 잊을 수없는 광경이 되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한복치마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냈다.
요즘 형형색색의 골무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만개를 목표로 한뜸한뜸 정성을 모으고 있다. 골무는 선을 보고 있으면 시름이 사라진다. 신이 놀이 개를 좋아 한다면 골무를 가슴에 달기도 하고 손에 쥐고 산책하지 않을 까 생각된다. 골무를 만들면서 어머니의 삶의 곡선도 생각하게 한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새벽에 눈 뜨면 물동이를 이고 물 나름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물동이를 이고 나선 골목길, 곡선이다. 마치 승무(僧舞)의 무용 곡선처럼 이어지는 것이 한국의 골목길이다. 북촌, 가외동, 경북궁 가보라. 눈에 부딪히는 모든 것들은 곡선이다.
한국의 선의 문화는 토착문화다. 감히 서양에서 넘볼 수 없는 분야다.
직선은 경직의 표현. 곡선은 자연의 흐름을 불러 온다. 활동적이고 리듬이 숨 쉰다.
한국의 소리들은 모두가 선이다. 대금의 소리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의 곡선이 나의 눈앞을 흐르는 것이 보이듯 착각하게 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 벌려 만지려 든다.
대금이 흐르면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고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그리고 끝나는 순간까지 춤을 삼키지 못한다. 선은 마음을 움직이고 어깨를 움줄움줄 거리게 만든다.
직선은 경직의 표현이라면 곡선은 자연이며 활동적이다.
시골의 할머니 댁에 가면 동네의 이곳저곳에서 물레 잦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신기 할 만큼 가늘게 흐르는 명주실들이 뽑혀져서 옷의 재료인 천들이 생산되어 나온다.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밤이면 삼촌이 불어주는 대금소리는 골목길을 타고 어디론가 갈 길을 재촉 한다. 삼촌의 대금은 지금도 겨울의 눈보라치는 창가에서 선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선의 문화는 서양 어느 문화보다도 역사가 길다. 피라밋의 건축은 직선의 건축이다. 한국의 무덤은 곡선이다. 경주에 가면 거대한 왕들의 무덤을 본다. 왠지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다. 어느 시인은 경주에 왕들의 무덤은 신(神)의 산책(散策)길이라고 표현한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신들의 산책길이 되겠는가.
선이 좋아서 한옥마을 서촌이나 북촌의 골목을 걷는다. 마치 하얀 뭉개 구름들이 유유히 흐르는 것 같다. 다가선 산들 바람. 처마 밑의 선을 타고 유유히 흘러간다. 아마도 저 산들 바람은 선으로 시작된 백두대간, 한라를 돌아 천사의 섬들을 산책하고 왔다.
선은 인정(人情)이다. 자연(自然)의 형상이다.
선(線)으로 뽑아낸 국수 한 그릇 드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