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추수의 계절이자 감사의 달이다.
‘감사’를 나타내는 영어 ‘thank’(땡큐)와 ‘생각하다’를 나타내는 ‘think’(싱크)는 말의 뿌리가 같다.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하기를 “생각한다는 것은 감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봄, 여름 땀 흘리며 농사를 지었던 농부들이 논과 밭에서 추수를 하는 모습은 밀레가 그린 ‘만종’ 이라는 제목의 그림에서 보듯이 오로지 감사를 주제로 그려져 있고 그 그림은 저물어가는 석양이나, 인생의 노년의 아름다움이 바로 감사에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국에 있는 청교도 교회의 벽에는 “ 생각하라 그리고 감사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생각 한다’라는 단어는 ‘기억하다’의 어원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서는 ‘기억하다’라는 동사를 히브리어로 ‘자카르’인데 자카르는 ‘생각하다’와 같은 어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나 기억, 그리고 감사는 모두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다. ‘감사’는 단순히 그 때 느껴지는 고마운 기분의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생각하고 기억하는 인식과 의지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감사는 기억을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말인데 우리말에서 생각은 ‘사모하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사모, 즉 사랑은 생각하는 것이며 감사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아키바라는 유대인 랍비가 나귀를 타고 기르던 개 한 마리와 함께 작은 등불 하나만을 가진 채 먼 길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도중에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어두운 밤이 되자 하룻밤 쉬어갈 방을 구하기 위해 불빛을 쫓아 마을로 내려왔지만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나그네에게 쉬어갈 방을 빌려주지 않았다. 랍비는 하는 수 없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기로 했다.
피곤한 하루 여행이었지만 아직 잠을 이루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랍비는 가지고 간 등불에 불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 후 밖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등불의 불이 그만 꺼지고 말았다. 랍비는 하는 수 없이 어둠속에서 그대로 잠을 청한 뒤 피곤에 지쳐 아침까지 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벌써 태양이 환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랍비가 타고 온 나귀와 데리고 온 개가 모두 죽어있었던 것이다. 간밤에 여우들이 나타나 개를 물어 죽였고 표범이 나타나 타고 온 나귀를 물어 죽인 것이다.
랍비는 허탈한 모습으로 불이 꺼진 등불만을 챙겨든 채 터벅터벅 마을로 내려와 보니 지난밤에 도적데들이 이 마을을 습격해와 닥치는 대로 집에 불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후에 물건과 곡식들을 다 털어간 것이다. 랍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내가 마을에 머물고자 했을 때 쉬어 갈 방을 제공받았다면 도적떼들에게 잡혀 죽었을 것이고 헛간에서 어젯밤 등불이 바람에 불이 커지지 않았다면 분명 나도 도적떼들에게 발각되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데리고 간 개가 여우에게 물려죽지 않았다면 개 짖는 소리에 도적떼들이 나에게 몰려왔을 것이고 , 타고 온 나귀가 표범에 물려 죽지 않았더라면 분명 소리를 질러 내 생명까지 잃었을 터인데 이 모든 것을 대신하여도 바꿀 수 없는 천하보다 더 귀한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니 랍비는 저절로 두 손을 모우고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농민들은 주곡인 벼농사가 유례없는 풍년을 맞았지만 감사보다는 걱정과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
땀 흘려 지은 벼의 수매가가 너무 낮아 생산비용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색된 국민경제와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한숨만 땅이 꺼지게 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너무나 많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수많은 생명들이 굶어 죽어가는 북한의 동포들을 생각하고 유럽의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전 세계로 살기위해 흩어지는 난민들의 처지를 보면서도 삼천리금수강산에 복을 내려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신 하늘을 향해 두 손 모아 감사를 드려야 한다.
생각하며 기억하는 감사의 계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