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여서 타인들과의 관계를 무시한 삶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집단구성원들끼리의 원만한 일상생활을 하려면 서로 불편을 야기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집단생활이 원만히 영위토록 서로가 지켜야 할 수많은 의무와 권리의 규범들을 형성하면서 공동생활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새 직장이나 타 지역으로의 이주처럼 새로운 환경에 소속하게 되면 처음에는 모두가 이상하다.
그러니 위협적인 새 환경과 타협하고 적응하는 새로운 규칙들을 익혀내야 한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던 규칙들도 배워서 결국에는 환경을 익숙하게 헤쳐 나가는 법을 신기하게도 삶에 적용한다.
이처럼 일상의 삶이 제대로 돌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작용함으로써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서로 부딪치지 않고 무사히 해결하도록 해주는 기적 같은 인간의 지력을 ‘상식’이라 부른다.
그런데 상식은 아주 평범한 규범으로 서로의 삶속에서 물 흐르듯이 암묵적으로 적용해가기 때문에 상식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
렇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던 적용되어야 할 무수한 상식들이 인간의 모든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항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끊임없이 참고해야할 규칙들치고는 분명히 규정하기 어려운 것들일 뿐만 아니라 깨져봐야 그 존재를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니 상식이란 매일매일 일어나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면서 배우고 익혀야할 일반적인 지식으로서 평생을 두고 축적해가야 할 삶의 지혜다.
물론 상식에는 일반적인 관습, 전통적 예절, 전래된 익숙한 믿음, 자연스럽게 터득한 판단, 의사나 교사처럼 특정 직업에 따른 해묵은 전통, 어떤 상황에 적절히 활용, 예측, 판단하는 바탕이 되는 기준 등 다양한 범주에 적용되는 통상적인 지식을 지칭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식은 논리적으로 명확한 지식체계와는 달리 다분히 실용적이어서 세상에 대처하는 단순한 답을 제시하는데 그칠 뿐이다.
지식체계는 개개의 특수성에 따른 공통점을 묶어 보편적인 하나의 법칙을 세워 모든 상황에 적용토록 논리적으로 원리화한 것이라면 상식은 각각의 상황에서 무엇이 적절한 대처방안인가를 단순히 제시할 뿐이다.
그러니 상식은 매우 정교한 부분까지 아우르는 것일 수 없기 때문에 상식을 공식화하려고 하면 미묘한 차이에서 비롯된 다양한 걸림과 늘 부딪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만으로는 어찌해야할 바를 결정하기 어렵거나 실수를 저지를 확률도 매우 높지만 상식마저 결여된 사람은 자신이 집중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혀 감을 잡지도 못하고 난감해할 뿐이다.
그래서 상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설명해서 이해시켜주기도 매우 어렵고, 설령 다소 이해했다해도 조금이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자기식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상식이란 시간과 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한사람에게는 합리적인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신기하고 기이하거나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서로 다른 사회에 속하거나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하면 그들만의 상식을 적용한 삶을 살기 때문에 일반적 상식으로 여기는 ‘공정함’ ‘평등함’도 절대복종이 상식인 왕정체제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니 쌍방이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충분히 공유한 경우에만 ‘상식적’이라는 사실이 통한다. 따라서 상식이란 사회규범, 관습, 관행 속에 암호화되어 있는 ‘집단적이고 암묵적인 앎’이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식이라는 유형의 앎을 제대로 습득하려면 그 집단에 직접 참여하여 미세한 부분까지 익혀가는 수밖에는 없다.
일례로 한 몸에 양성을 가진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로만인은 양성의 아이를 혐오하여 살해했고, 희랍인은 그대로 감수했고, 나바호족은 숭배했고, 동아프리카 포콧족은 단순한 실수로 간주하여 흠이 있는 항아리를 대하듯 데리고 있거나 내버렸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에서 매도당하는 노예제도처럼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는 전적으로 정당한 일로 여겼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여겨지는 관습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절대적 확신으로 믿고 신봉해버리기 때문에 다른 상식을 내밀면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식이 뿌리내린 사회에서 상식에 관한 이견을 없애기란 매우 어렵고, 양쪽 모두 합리적인 논의를 펼쳐나갈 근거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모르기 때문에 상식에 관한 이견을 해결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상식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보이지만 온전히 믿고 따르는 것은 심사숙고한다.